(중)형식과 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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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무릇 모든 예술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의 관계는 상호유기적이어서,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기도 하고 형식이 내용을 좌우하기도 한다. 이때 원칙적으로는 하나의 주제와 내용이 먼저 있고 그에 따라 적당한 양식과 형식을 선택하는 것이 순서이겠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형식을 먼저 잡아 놓음으로써 거기에 담을 내용의 성격을 이끌어 나갈수도 있다.
오늘날 기성 연극계는 연극의 개념에 대하여 두가지 측면에서 폐쇄된 경향을 보이는 듯 하다. 하나는 연극의 개념을 서구 근대극의 이식이나 그 후의 서구 현대극의 수입가공품으로 충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찌기 우리 전통 민속극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어느 선각자까지도 『한국에는 연극다운 연극이 없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볼때 이같은 연극계 풍토는 하루아침에 그리된 일이 아닌성 싶다.
우리 전통민속 연회와 현대적 의미로서의 연극을 하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형식과 내용을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짓는 작업이야 말로 당면한 연극계의 과제가 아닐까?
또 하나는 연극이 극장이라는 제한된 장소에서만 행해지는 것으로 굳어져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문예진흥을 위한 첫사업의 하나가 현대적 시설을 갖춘 대극장을 건립하는데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일면을 엿볼수 있다.
그러나 그렇듯 주어진 공연장에 출입하는 사람은 특수한 계층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며, 더구나 오늘날의 무대극은 대차로 「폐쇄된 공간에서의 격리된 만남」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마당극은 그러한 특권적 공간을 거부함으로써 연극의 주체와 내용을 변경하고 확장하려는 의도에서 제기된 양식이다.
그렇다고 극장무대에서 진행되는 연극행위들이 모두 가치없는 일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극장은 마당의 일부다. 그런데도 공연위주 또는 무대양식화라고 하는 일련의 경향들이 풍미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당, 즉 생활현장을 잊어버리고 있던 점에 문제가 있다. 공연공간은 작품의 형식을 규정하고, 작품형식은 작품내용을 제한하고 작품내용은 관객의 의식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연극에 있어 먼저 공연공간과 작품형식을 혁신함으로써 거기에 담을 주제와 내용을 보다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밀착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앞서 예술작품의 내용과 형식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을 전제한 바 있듯, 새로운 연극·연희운동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 왔다.
예컨대 탈춤의 정통적 계승이랄 수 있는 창작 탈춤의 경우 초기에는 탈춤 구조에 오늘날의 문제를 단순대입하던 단계에서 이제는 탈춤의 생성원리를 기초부터 다시 밟아가는 원초적인 탈놀이 방식으로 옮겨와 있다. 민속극의 현대적 계승이랄 수 있는 마당극에 있어서도 전체 판을 몇개의 독자적인 마당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시도하거나 생활현장에서의 단편적인 촌극·소인극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꿔 말하면 생활현장 당사자들의 삶과 의식이 그에 맞는 새로운 형식을 창출해 내는 과정인 셈이다. 전문연희집단으로서도 이른바 「전체적 통일속에서의 부분의 다양화」를 적용한 각 마당 형성 원리와 「촌극이 경연형태로 이루어짐으로써 생겨나는 하나의 판」의 형성 과정은 점차 합치점에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전망된다. 이때 다만 유념해야 할 점은 진정한 민중문화에 있어서 모든 지킴과 가치척도는 민중·자신의 생활체험과 미의식으로부터 나올수 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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