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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물질투입 가능성은 희박|"신종범죄"…콜라·술회사등「협박편지」사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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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량음료수와 주류회사를 대상으로 한 협박편지 사건은 범행의 실행여부와 관계없이 일반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충격적이다.
협박편지를 받은 4개회사가 국내에서는 음료수 또는 주류의 대명사로 알려있다시피 한 굴지의 회사들이고 그 제품 또한 대량소비품이기 때문이다.
어제까지의 수사를 통해 경찰은 사회 불만자의 장난 또는 정신이상자의 소행 등으로 분석, 실제로 음료수나 주류에 극약을 투입하는「제2의 범행」을 실행할 것이라는데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경찰이 이같이 믿는 것은 코카콜라회사에 대해서는 『돈을 주면 경쟁회사인 펩시콜라에 극약을 넣겠다』는 등 편지내용이 장난성이 짙고「한국살생주식회사」또는「전과자와 서민을 보호하는 단체」등 자기 과장적인 표현 등이 많다는 점등이다.
또 협박편지를 받은 회사측에서도 제조과정이나 유통과정에서 독극물이 투입될 소지가 거의 없다고 장담하고있다.
그러나 지난해 을지병원 독살사건, 강동카바레 유산균 독살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유나 유산균음료의 소비가 격감하는 등 소비자들이 과민반응을 보인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도 해당회사에 타격을 줌은 물론, 소비자들에게도「혐박대상이 된 음료수나 술을 안심하고 마실수 있나」하는 심리적 불안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물질 투입 가능성>
협박편지가 배달된 회사들은 모두 제조공장의 경비를 강화했으며 제조·유통과정에서 독극물이 투입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조과정>
=음료수나 술의 제조과정은「보틀링라인」(Bottling Line)이라 불리는 자동공정에 의해 세척, 원액주입, 봉인,포장이 이뤄진다.
이 공정에서 포장 직전 강력한 빛을 음료수병에 여과시켜 이물질 포함 여부를 검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장내부엔 5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지만 실제로 기계고장이나 빈 파손 등의 경우이외엔 거의 제조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유통과정>
=제조 공장에서 소비처(대리점·슈퍼마킷·대형 식품점)까지 직접 배달하는 「루트·세일」(route sale)이 주종을 이룬다.
따라서 회사직원이 범행에 가담하지 않는 한 대리점이나 슈퍼마킷까지의 유통과정에서 독극물이 투입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여진다.
문제는 그 이후의 발생가능성이다.
범인이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나 술 몇 병을 구입, 교묘하게 뚜껑을 열고 독극물을 주입한 뒤 공중전화 박스나 길, 거리 등에 놓아두었다고 가정하면 불특정인이 이를 마시고 변을 당할 수 있다.

<살상 가능성>
음료수 또는 식품에 독극물을 넣어 인명을 살상한 사례는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지난해 을지병원 독살사건·강동카바레 독살사건 등이 발생,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해의 두 독살사건은 희귀한 사건이었지만 범행동기면에서 볼때는 특정인을 살상함에 따르는 금전적·심리적 보상을 노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협박편지 사건은 금전 요구→인명살상→제품 전체의 판매타격이라는 협박수법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범죄형태로 풀이된다.

<국내의 예>
=지난해 3월26일 을지병원 입원실에서 염필말씨(37)가 청산가리가 섞인 종이봉지 우유를 마시고 숨졌다.
범인은 염씨의 부인 김극주(39)로 보험금 6천만원을 타내기 위해 범행한 겻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자신의 범행을 위장하기 위해 유산균 음료수병에 농약을 주입시켜 다른 환자를 상대로 두차례나 독살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지난해 3월17일 강동카바레(서울천호2동)에서 발생한 신동찬씨(26·카바레웨이터) 독살사건은 아직까지 미궁에 빠져있다.
신씨는 여자화장실 거울 선반에 놓여있던 청산가리가 섞인 유산균 음료수를 마시고 변을 당했다.
경찰은 카바레와 신씨 주변의 원한관계 등에 대해 집중수사했으나 단서를 찾지 못하고 「불특정인」을 노린 무동기(무동기) 살인으로 단정했다.

<외국의 예>
=77년 1월초 일본 동경에서는 공중전화박스에 놓여진 청산가리가 섞인 콜라를 마시고 고교생등 15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학생이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조사결과 콜라병의 청산가리는 치사량의 60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에 잇달아 동경역앞 지하도계단 손잡이 위에 청산가리 가루가 뿌려진 초컬릿이 종이봉투에 들어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신종살인」「유괘범(유괘범)에 의한 무동기 살인」등으로 불리며 큰 충격을 몰고 왔으나 범인은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다.
또 82년10월 미국 시카고에서「타이레놀」이란 해열·지통제를 먹고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사결과「타이레놀」유통과정에서 누군가가 청산가리를 교묘하게 집어 넣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은 또 일본의 유명제과회사 「에자끼 그리코」사건을 흉내낸 모방범죄일 가능성도 있다.
에자끼 그리코 사건은 금년 3월18일 밤9시35분쯤 자택(병고현서궁시)에서 목욕중이던 제과회사 에자끼 그리코사의 사장「에자끼·가으히사」씨(강기승흠·42)가 벌거벗은 채 권총을 든 괴한들에게 유괴된후 현금 10억엔과 금괴 1백kg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날아들었다.
경찰이 총력을 기울여 범인을 찾고있는 동안 3일후인 같은달 21일「에자끼」사장은 감금됐던 창고에서 탈출했으나 5월10일 금품을 주지 않으면 그리코사 제품에 독극물을 넣겠다는 협박장을 오오사까의 주요 일간지에 보내 경찰과 정면 대결할 태세를 보였다.
일반 소비자들은 언제 독약이든 과자를 먹게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그리코사의 제품을 기피, 슈퍼마킷 등에서도 그리코사 제품의 판매를 중지했다.
이 사건으로 연간판매고 1천5백억엔에 이르는 그리코사는 매상고가 절반으로 줄고 주식가격이 폭락하는 큰 타격을 입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6월 수입된 이 회사의 제품을 수거하는 소동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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