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편 가르기 그만하고 통합으로 나아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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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06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아침에는 누구나 덕담을 건네고 희망과 미래를 얘기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런 새해 아침을 잃었다. 지난해의 그림자가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연초에 걸었던 기대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무참히 무너져 내린 경험을 되풀이해 왔다. 40, 50대 실직 가장의 축 처진 어깨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실업자의 풀 죽은 모습에서, 좀처럼 투자 의욕을 되살리지 못하는 기업인의 모습에서, 심화하는 양극화 현상 속에서 전기마저 끊겨야 했던 이웃의 얼굴에서 우리는 절망을 본다. 올해에는 좀 나아질까 하는 한 가닥 희망마저 접은 지 오래다.

그래도 우리가 그냥 주저앉을 수 없음은 일본의 지배와 6.25의 폐허 위에서 지금만큼 살게 되기까지 흘린 피와 땀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반 세기 만에 따라잡은 국민의 저력을 믿기 때문이다. 단축 달성의 후유증으로 지금은 비록 멈칫거리고 있을지라도 국민의 뜻을 모을 수만 있다면 다시 뛸 수 있다. 정치권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말에, 여당의 무력함에, 야당의 안이함에 지친 국민에게 황우석씨 사건은 좌절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한때 국민의 영웅으로 칭송받던 과학자의 사기극과 땅에 떨어진 언론의 취재윤리를 보았다. 진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상황이 반전을 거듭하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정부와 언론과 학계라는 것조차 얼마나 취약한지 목격했다. 우리 사회의 밑바닥까지 몽땅 드러났다. 허위와 거짓에 기초한 것들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 일부 대중의 무조건적인 광기에 맞서 사실을 밝혀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믿자. 혹독한 경험을 거치면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진실 위에 사회를 바로 세우자.

연초부터 정치권의 대립과 분열은 예고돼 있다. 사학법 개정안의 강행처리와 이에 반발한 야당의 장외투쟁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여야의 전당대회와 지방선거까지 겹쳐 있어 당내 권력갈등은 여야관계의 악화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 와중에 2년 남은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은 점점 깊어지고, 사회의 편 가르기 현상도 더욱 노골화할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과 정부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정치에 휘둘려 행정은 실종되고 말 것이다.

새해에는 쓸데없는 이념 갈등을 끝내야 한다. 일방적인 양보에 입각한 대북관계도, 국익을 무시한 낭만적 민족주의도 경계 대상이다. 북한을 지원하면서도 북한의 인권과 위폐문제에 대해 짚을 것은 짚고, 북핵 해결을 위한 미국과의 공조를 중시하면서도 위험한 대북정책에는 적절히 제어하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중앙일보는 새해를 맞아 모든 믿음이 무너져 내린 사회에 신뢰를 재구축하고, 갈가리 찢어진 사회에 통합을 가져다주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한다. 공동체가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