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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낯익은 얼굴의 낯선 동상이다. 용인 자연농원 호삼미술관 앞뜰에 세워진 이승만 박사와 「맥아더」 장군의 전신상.
비록 크기는 실물대보다 다소 작은 단아한 규모지만, 동상의 이미지는 천군만마를 거느린 호걸의 위풍이다.
이분들의 동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유럽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 동상문화에 놀라게 된다. 서양의 문화는 동상의 문화라는 인상조차 든다. 가각마다, 유명건물마다 거의 예외없이 동상들이 서 있다. 그 주인공들은 때로는 금시초문인 인물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동상 앞에서도 경건히 머리 숙이며,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을 가까이 보고 있는 것에 적이 행복해 하는 표정들이다.
파리의 한 공원엔 『이곳에서 독일군의 폭격으로 한 소년이 죽었다』 는 동판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기억해 두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처럼 소중하게 간직하여 후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동상을 통해 환상이나 관념 아닌 실감과 현실로서 그 가치를 확인하게 된다.
이승만 박사는 비록 풍운 속의 인물이지만 일생을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친 건국의 영웅임엔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초대대통령으로서 그는 민주제도의 창건, 국군의 창설, 한미방위조약의 체결등 국기를 다진 창업수성의 위인이었다. 6·25동란의 국난을 이겨낸지도자인 것은 더 이를데 없다.
「맥아더」 장군은 바로 그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우리의 하늘과 땅, 그리고 자유를 지켜준 명장이자 은인이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이분들의 동상조차 보기 힘든 현실은 새삼 역사의 적막감을 더해 준다.
바로 이 동상의 발원자인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82년 봄 방미 길에 태평양연안의 항구도시 노퍼크로 「맥아더」 장군의 미망인을 심방했었다. 그때의 일화가 있다.「맥아더」부인은 『일본인들은 벌써「맥아더」장군을 잊고 있다』는 말을 했다. 이 회장은 그 자리에서 동상의 건립과 기증을 약속했었다.
광복 39년, 건국 36년. 우리나라는 이제 경제적으로 가난을 벗고, 정신적으로 성숙했으며, 국위를 보아도 손색없는 나라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 박사와 「맥아더」 장군의 동상은 새삼 우러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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