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라면 가난해야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국기독교 선교1백주년 선교대회를 앞두고 한 기독교계의 원로가 우리 기독교의 현실을 솔직히 자성하고 있는 것은 인상적이다.
기독교계의 물질주의ㆍ신비주의·목회자윤리문제들에 대해 고조되고 있는 사회적 지탄에 대해 최근 일부 기독교인들이 자생대신 반발하고 있었던데 비추어 그의 자기비판은 높이 평가될만한 측면이 있다.
한국기독교 선교1백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자기반성용 토대로 「거듭 태어나는」용기를 호소한 것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우리 기독교회는 지난1백년동안 비약적 성장을 거듭해서 현재 8백만 신도를 포용하는 대종교집단이 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적 성장일 뿐 질적 내실을 기하지 못했다.
비록 기독교단의 물질적 외형적 성장은 눈에 보이지만 우리사회의 건전한 발전에는 기여하지 못하고있었다.
때문에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 제2세기의 진로로서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탈바꿈하고 동시에「사랑의 실천운동」을 적극화한다는 결의는 당연한 것이겠다.
그런 진로 설정은 지금까지 우리기독교회가 추구해온 물질주의·신비주의·대교회주의를 필연적으로 극복해야 할 것은 물론 목회자들의 자기혁신용 전제로 하는 것이다.
오늘 2만6천교회 4만명의 목사들 가운데에는 종교지도자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이 문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도 상기된다.
대도시의 일부 목사들은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며 다만 입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호소해오고 있다.
목사라면 적어도 예수의 삶에 따라 예수만큼 가난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예수의 가난했던 정신만은 쫓아야 할 것이요, 적어도 돈과 여자와 검약에서 일반인의 생활의 모범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오늘의 기독교 목회자들이 자생과 혁신의 새 출발을 기약할 필요가 있다.
뿐더러 오늘의 목회자는 기독교신앙의 핵심인 「공의와 사랑」을 행하는 삶에 선핼적 역할을 수행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겠다.
「공의와 사랑」이 하느님의 도덕법칙의 기본이라면 하느님의 종을 자처하는 목회자들이 역사와 사회의 현실에서 정의와 사랑의 실천에 두려움 없는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요구라 하겠다.
어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원로 한경직목사가 한 말은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다. 『예수의 삶을 따라 사는 목사라면 가난해야합니다.』
더욱이 예수와 같이 「착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하지는 못할 망정 불교 등 다른 종교인들을 멸시하고 적대시하는 일도 없어야겠다.
오는 15일부터 열리는 한국기독교1백주년 선교대회를 계기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냉철한 자성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노력을 성공적으로 이루기를 당부하는 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