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거리 악사 3남매… 결식아동 돕기 성금 마련 위해 5년째 세밑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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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사랑의 도시락 콘서트'를 5년째 열고 있는 김태인·설혜·태림 3남매(왼쪽부터).

수은주가 영하 8도까지 떨어져 찬바람이 쌩쌩 불던 29일 밤. 전북 군산시 나운동 차병원 네거리에서는 '포에버 인 러브''올드랭 자인''어메이징 그레이스'등 아름다운 색소폰 연주곡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사랑의 도시락 콘서트'라는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김태인(20.경희대 영어과 2년), 설혜(18.중앙여고 3년), 태림(16.전북외고 1년) 등 3남매. 이들은 색소폰과 비올라.바이올린.오카리나.대금.소금 등 악기를 번갈아 들고 나와 오후 7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공연을 펼쳤다. 이들 3남매의 세밑 걸거리 공연은 2001년 시작돼 올해가 다섯번째다.

"7년 전 교환교수로 아빠(김수관.군산대 교수)를 따라 미국에 1년간 머무른 적이 있어요. 그때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길거리에서 자선공연이 연이어 열리는 것을 보고 '우리도 불우 이웃을 위한 거리공연을 해보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귀국 후 '가정형편 때문에 점심을 굶는 어린이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를 실천에 옮겼다. 3남매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여 2~3가지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정도로 능숙한 솜씨를 지녔다.

첫 음악회 때는 초.중.고생 세 명이 성금함을 앞에 두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행인들이 "앵벌이 나온 것 아니냐"는 오해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고, "학생들이 공부는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비아냥 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3남매의 순수한 뜻이 알려지면서 온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주변 상가 주인들이 가장 먼저 성금을 기부했고, 주민들은 따뜻한 커피.차를 끓여 내왔다.

이제는 연말이 가까워지면 "음악회를 언제 시작하느냐"고 물어올 정도로 관심을 가진 사람도 많아졌다. 길거리 공연으로 모은 성금은 결식아동을 위한 도시락 배달사업을 하는 '군산 열린교회'에 전액 전달하고 있다.

올 수시모집에서 숙명여대에 합격한 설혜양은 "올해는 오빠가 서울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 역시 입시에 매달려 연습을 많이 못해 걱정이 된다"며 "힘은 들지만 거리공연을 통해 남을 돕는 기쁨을 경험했고 자신감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태인씨는 "춥고 썰렁한 연말에 더 많은 거리에서 자선 음악회가 열려 아름다운 선율이 전국에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군산=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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