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득권 세력이 가로막는 ‘반값 임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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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광주광역시가 ‘반값 임금’을 지역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생산직 연봉을 4000만원으로 확 낮춰 완성차 공장을 유치하고, 일자리 1만 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연봉은 9000만원이 넘는다. 이를 감안하면 광주시의 정책은 파격적이다. 광주시는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위원장 출신 인사를 사회통합단장으로 영입하는 등 정책 실현에 1년 넘게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걸리는 법 제도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다. 노조의 반발도 만만찮다.

 광주시의 ‘반값 임금’이 새삼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용시장의 불합리한 정책과 관행이 지뢰밭처럼 깔려 좋은 일자리 정책이 발 붙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의 희망연봉이 309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연봉 4000만원이면 취업 절벽 앞에서 아우성치는 청년들에겐 꿈의 직장이다. 기존 근로자의 임금을 건드리겠다는 것도 아니다. 제3지대에 자동차 공장을 새로 만들어 그곳 근로자에게 좀 낮은 연봉을 주겠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이런 정책으로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스웨덴 생산직 노총(LO)은 청년실업률이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2013년 기존 신입 연봉의 75% 수준으로 채용할 수 있게 사용자단체와 합의했다. 지난해부터 시행해 청년실업률이 뚝 떨어졌다. 심지어 폴크스바겐 노사는 1999년 볼프스부르크시(市)와 공동출자해 아예 파견회사를 만들었다. 폴크스바겐에 근무하는 파견직원은 1만여 명에 달한다. 한때 유령도시로 불렸던 볼프스부르크는 지금 독일에서 가장 실업률이 낮고 활기찬 지역으로 변했다.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반값 임금을 주면 노조가 당장 “동일노동 동일임금 위반” “단체협약 위반”을 외치며 머리띠를 맬 게 뻔하다. 자동차 노조를 이끄는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반값 임금’을 승인할 리도 만무하다. 실업자가 원해도 노조가 틀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실현될 수 없는 구조다. 이러다 보니 회사도 처음엔 4000만원일지 몰라도 단체협약이 적용되면 결국 9000만원 넘는 연봉을 주게 될까 두려워한다. 고임금 구조가 단순히 임금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기득권을 지켜주는 형태로 변질된 노동법·제도를 뜯어고치지 않고는 지자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 근로자 개인의 뜻보다 노조의 의견이 우선되는 노사관계의 틀도 이 참에 바꿀 필요가 있다. 한국GM이 짐을 쌀 채비를 하는 이유 역시 아무리 임금을 낮추려 해도 법·제도에다 노조의 반발까지 걸리는 사안이 너무 많아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서다. 기업 차원에서 도저히 해결하기 불가능한 지경이다.

 때마침 정부가 공공부문 임금피크제를 시작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나섰다. 광주시와 같은 지자체의 노력에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낡은 법과 제도를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 노조도 기득권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에 목마른 청년을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