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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내한한 일 경제평론가 「하세가와」씨에 듣는다|대담=김두성 <본사 경제문제 연구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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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하세가와·게이따로」(장곡천경태낭)씨가 5년만에 한국에 와 정부 및 민간의 경제관계사람들을 만나보고 산업시설도 돌아보았다.
「하세가와」씨의 눈에 비친 한국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하세가와」씨는 이론보다도 현장에 직접 파고드는 이코너미스트로서 l년에 2백50회씩의 경제강연을 하며 매스컴에도 기발한 착상을 발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5년만에 다시 한국을 본 인상은?
▲거리가 깨끗해졌고 시민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데다 공장마다 활기가 넘친다. 이것은 모두 그 동안의 경제발전의 결과라고 보는데 5년 전과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통계를 보니 연 8∼9%의 고도성장을 하고도 물가는 2∼3%로 안정되었는데 이런 성과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성장이나 물가는 좋으나 국제수지가 다소 염려된다.
▲많은 한국인들이 국제수지, 특히 외채문제를 걱정하고 있으나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4백억달러가 넘는 외채가 한국경제의 애로가 되고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외채문제는 규모보다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달려있다. 한국은 중남미제국과는 달리 외채를 잘 컨트롤하고 있다. 그들처럼 원리금 상환기일을 연기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
약속을 잘 지켜 오히려 채권국들이 한국에 대해선 돈을 더 빌려주려 하고 있다. 지불 능력에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반도체가 3천만달러를 무담보·변동금리조건으로 해외금융시장에서 기채를 했는데 이는 한국기업도 이제는 정부나 은행 보증 없이 자력으로 외국에서 돈을 얻어 쓸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유수한 기업이 안정된 조건으로 중장기자금을 직접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발전의 매우 밝은 청신호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이 국제 수지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있는 이때 설상가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대한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보호주의 강화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나?
▲보호주의가 수출국에 좋은 자극이 될 수도 있으므로 크게 우려할 것은 못된다. 노력만 하면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있다.
비슷한 예로 지난 80년 일본의 대미 자동차수출물량은 연 1백68만대로 규제 받았다. 미국의 대일 자동차수입규제 조치가 발표되자 도요따(담전) 자동차사장은 오히려 이 조치를 환영했다.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지금 도요따는 규제이전에 비해 수출액은 2배, 이익은 2배강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수출수량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더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장 없고 품질이 좋은 일본 자동차에 대한 수요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 비해 공급은 제한되어 있어 현지가격이 오르고 있다. 수입규제가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컬러TV 마찰 때도 일본은 현지 법인 설립이라는 돌파구를 찾아 지금은 일본의 미국 현지법인이 만들어 파는 컬러TV가 직접 수출물량보다 수배나 많다.
규제에 대한 대응자세는 첫째 품질 성능을 높여 현지로부터 신뢰를 얻고 둘째 현지법인을 설립하여 쓸데없는 마찰을 피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금년 이후의 미국경제는 어떻게 되리라고 보는가?
▲현재의 호경기가 내년엔 끝날 단기적인 것이라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매우 탄탄하다. 지난 상반기의 미 경기 특징은 금리가 오르고 있는데도 오히려 경기는 좋아졌고 거기에 물가도 전례 없이 안정됐다는 점이다. 개인소비나 설비투자도 확실히 늘어났다. 경제상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이는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 경영자들이 미국 경제의 장래에 대해 자신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레이건」 경제정책을 신뢰, 인플레는 반드시 잡히고 현재의 고금리도 조만간 떨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인플레 없는 시대의 최상의 경영전략은 품질경쟁에서 이기는 것뿐이다. 설비투자가 전년비 17%라는 공전의 신장세를 기록하고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비 인플레시대를 맞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또 하나의 경영전략은 「자이(자이)테크」다. 이를테면 재견운용테크놀러지다.
물가가 오르고 부동산 값이 뛸 때는 물건을 갖는 것이 바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나 물가가 안정되어있는 지금은 물건보다 현금을 갖는 것이 더 유리하다. 세계기업들은 그래서 지금은 불요불급한 자산을 팔아 현금을 운용하고 있는 경향이다. 미국의 경우 84년 3월말 현재 주요기업들의 유동자산 보유액은 전년 동기비 2천억달러나 늘어났다. 그와 같은 현상은 영국·일본 등도 마찬가지다.
물건보다는 유동성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유동성을 장·단기 금융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이 부동산을 갖고있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국경기는 물가는 잡히고 금리는 내년 상반기에는 7%선으로까지 떨어지는 등 탄탄한 경기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
-올 가을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을 가기로 무역역조 등 한일 경제현안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데….
▲전대통령의 방일은 불행했던 20세기의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21세기의 대등하고 우호적인 한일관계를 만드는 기초작업이 될 것으로 믿는다.
무역역조에 대해 한국이 매우 초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한국의 대일 수입구조를 보면 90%가 기계 또는 원자재다. 이를 가공하여 미국 등에 수출하고 있다.
대일 무역역조 시정을 위한 조치로 이들 수입선을 미국 등으로 돌릴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하면 원가가 비싸게 먹히고 아프터서비스 등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일 무역역조시정은 수평 적국 제분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장기적 노력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할만한 물건을 만들라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창의와 노력을 기울이면 길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TV가 부착되어 있는 전자레인지 같은 것은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은 일본 시장조사에 좀더 힘을 들여 일본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해야할 것이다.
무역 역조시정 등을 무역 외의 방법으로 시정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는 장기적으로 보아 소망스러운 방법이 못된다.
당장은 어렵고 힘이 들더라도 경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한국의 경제적 실력을 튼튼히 다지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지 고잉』(easy going)이 당장은 편하고 좋겠지만 그것은 반드시 다음 세대에 주름살로 넘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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