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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도 짐 쌀 채비 … “차산업 공동화 막자” 반값 임금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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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7일 광주 기아차 공장에서 오전 근무(1교대)를 마친 근로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공장 입구에 적힌 ‘해외공장 막지 못하면 4공장도 물 건너간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프리랜서 오종찬]

광주광역시가 완성차 공장 유치를 위해 생산직 1인당 4000만원 수준의 ‘반값 일자리’를 제안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생산직 1인당 연봉(약 9000만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치다. 제조업체가 거의 없어 지역경제가 ‘공동화(空洞化)’ 위기를 맞게 되자 내놓은 타개책이다.

 특히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고임금 등 떨어지는 생산성으로 한국GM의 양산차 규모를 대폭 줄이는 대신 그 물량만큼의 생산을 인도 공장으로 돌리겠다고 밝힌 가운데 나온 발언이라 더욱 주목된다.

 윤장현(66) 광주광역시장은 지난달 30일 본지와 만나 “국내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면서도 국내 공장에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고임금, 노사관계를 포함한 노동 경쟁력 저하”라면서 “노·사·민·정, 4자가 모두 협력해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 지역 경제를 되살리고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막고자 한다”고 말했다. 광주에 추가적인 완성차 생산 시설을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해 내는 대신, 임금은 기존의 반값 정도로 낮추겠다는 의미다.

 윤 시장이 지적한 대로 국내 자동차 산업의 고임금 구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본지가 10일 산업연구원과 함께 한국과 미국의 생산직 1인당 임금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08년 시간당 29.37달러였던 미국 완성차 생산직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5년 뒤인 2013년 24.7달러(인플레이션 반영분 포함)까지 떨어졌다. 반면 한국(현대·기아차 기준)은 2008년 24.39달러였던 시간당 임금이 2013년 40.91달러(명목 기준)까지 치솟았다.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 동안 10%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사이, 노동비용도 그만큼 상승했다는 의미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 세계적 완성차 업체들은 이전에 방만했던 경영을 교훈 삼아 한국보다 훨씬 높은 노동생산성을 기반으로 품질 높은 차를 생산하고 있다”면서 “경직된 노동구조, 고임금 체제 등 국내 자동차 산업의 현실은 10년 전에 비해 완성차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프랑스와 매우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4년만 해도 세계 5위(연간 362만 대)의 ‘자동차 강국’이었던 프랑스는 지난해 말 세계 13위(174만 대)까지 추락했다. 회사 최고경영자(CEO)를 납치·감금해서라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해내는 프랑스 강성 노조 때문에 ‘보스내핑(영어로 ‘상사’를 의미하는 ‘boss’, ‘납치’를 뜻하는 ‘kidnapping’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프랑스의 ‘국민차’ 푸조시트로앵(PSA)은 지난 2013년 7월 자국 내 공장을 폐쇄하고, 고용인원 10%(약 8000명)를 정리해고했다. PSA는 또 지난해에는 중국 둥펑(東風) 자동차에 회사 지분 14%(약 11억 유로)를 매각했다.

 반면 프랑스와 라인강을 접하는 ‘이웃 국가’ 독일은 같은 기간 550만 대에서 592만 대로 생산량이 늘고 같은 기간 실업률도 10.6%에서 5.1%까지 떨어졌다. 전 세계 2위 메이커 독일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독일 완성차 메이커 노사가 임금 동결, 이중 임금제 도입에 합의한 덕분이다. ‘BMW’ 바이에른주 공장도 생산직 근로자(약 1만7500명)의 평균 연봉이 4만~5만 유로(4835만~6044만원)에 불과하다. 광주시의 전략도 독일을 벤치마킹해 후진적인 노동 생산성을 개선해 ‘반값 임금’ 구조를 만드는 한편,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 경제를 재생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반값 임금론’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제도적·법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노무현 정부(2003~2008년) 시기에 정착된 산별교섭 체제 등 각종 노동법 관련 조항들이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1인당 연간 4000만원 수준의 일자리는 현재 노조법의 근간인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에 위배된다. 더군다나 기아차 광주공장 노·사가 4000만원 일자리에 합의한다고 할지라도 현행 체제에선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차 지부가 이를 승인해줘야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을 막고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반값 임금론’은 실효성이 있다”면서도 “산별 노조가 개별 지회의 이런 움직임을 용인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행 노조법에서는 상급 단체(민주노총)의 허락을 받아야 노조 지회(기아차 지부)가 상급 단체를 탈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도 현실적 제약을 들어 광주광역시의 제안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연간 166만 대(국토교통부 집계) 규모의 내수 시장에서 452만 대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기아차의 국내 생산 비율은 56%(지난해 말 기준)로 도요타(43%), 닛산(18.8%), GM(20.7%)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환율이 변동하면 상대적으로 경쟁업체에 비해 영업이익 구조가 취약한 실정이다. 근로자별로 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이중 임금제’ 도입도 난망한 실정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초기에는 연봉 4000만원만 준다고 치더라도 2~3년 후엔 임금 단체협상에 따라 생산직 평균 수준의 연봉(9700만원)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광주=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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