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문서화만 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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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국과 중공이 2년간 19차레의 회담을 열며 끌어온 홍콩장래협상은 지난달3O일 등소평중공지도자와 「제프리· 하우」 영국외상간 회담에서 주요현안에대해 결정적인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타결의 관문으로 들어섰다.
남은일은 9월말까지 합의사항을 협정서로 문서화하고 몇 가지 사소한 문제에 대해 절충읕 벌이는 것이다.
99년간의 영국조차기간이 끝나는 1997년6월30일이후 홍콩의 장래를 어떻게 규정할것인가에 대한 두나라간의「합의」사항은 총론부분외에는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이번회담이 성공걱이라는 관측은 30일 「하우」 외상이 중공의 최고실력자 등소평과 직접회담을 가졌을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가 해결안돼 또 결렬될 상황이었다면 별장에서 휴가중이었던 등소평이 휴가를 중단하고 돌아와 「하우」 를 만나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있년9월에 시작된 훙콩협상은 등소평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금년9월말 시한때문에 사실상 쫓기듯 진행되였다.
등은 시한을 넘김경우 홍콩문제는 중공정부가 마련한 독자적 방안에 따라 처리하겠다는것읕 분명히 못박았었다.
협상테이블에서 다루어진 주요쟁점은 지금부터 13년후 홍콩의 주권이 중공에 귀속되는것을 전제로 ①어떻게하면 5백30만 홍콩주민들의 충격과 동요를 극소화시키고 지금과 같은 경제적 안정과 번영을 지속시킬것인가 ②주권이양과정에서의 혼란을 막아 순조롭게하느냐로 압축되었다.
중공은 후자문제에 대한 방안으로 97년까지 과도 기간중 영-중공 양국연락위원회를 두어조정기능을 맡도록 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영국측은 .그러한 위원회가 결국 영국의 홍콩통치를간섭하게될것이라는 이유로 강렬한 반대반응을 보였었다.
①번문제에 대해선 영국은 중공으로부터 구체적이고 분명한약속을 받아내 협정문서화 하겠다는 입장으로 임했다.
중공은 이에대해 구체척으로 문제화 하는것에는 반대하고 다만 홍콩의 현재상태 (자본주의사회)가 적어도 50년은 유지되는것을 보강한다는 약속만 거듭 했었다.
이들 두가지 큰 쟁점은 이번 회담에서 완전합의를 본셈이다.
두나라가 끝까지 자기고집대로 나가지않고 「주고받는」 선에서 절충을 본것은 양폭이 모두 약점을 갖고있기때문이다.
중공으로서는 협상의 칼자루를 쥐고있지만 영국측 요구를받아들이지 않을수없었던 이유는 첫째 홍콩주민을 무마,안심시켜야하고,둘째 중공의 외화수인의 큰 창구이기도한 홍콩의 경제가 몰락하는것을 막아야하마,세째 대만통일의 전략도 고려해야하는 입장때문이다.
그렇지않아도 등소평선언이후홍콩의 딱값·주식값은 폭락하고 사람과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탈홍콩현상」 이 부쩍 늘어나고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공으로서는 영국과 협상을해서순조로운 접수를 하는것이 더유익하다고 판단한것이다.
중공은 그동안 홍콩의 주민과 경제의 동요를 막기위해△지금의 사회· 경제체제를 유지토록하겠다 △홍콩의 통치는 외교· 국방외에는 현지주민의 자치제에 맡긴다 △중공에서 관리를 파견하지 않겠다. △지금의생활방식유지를 보강하고 자유무역항으로서의 특성을 인정하겠다 등등 여러가지를 공언했는데 이러한 약속들은 협정문서에 담겨질것으로 보인다.
한편 영국의 입장도 중공과 끝까지 맞설 형편이 못된다.조약상 97년에는 홍콩을 돌려주어야되는 대전제가 있는데다 홍콩의 식수와 전기·식품의 공급을 거의 중공에 의존하고있는 지정학적조건이 협상카드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고있다.
또 영국으로서는 궁극적으로중공과의 관계를 개선·강화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영국으로서는 97년까지 홍콩의 식민통치가 별탈없게 되고영국정부에서 발급한 패스포트를 갖고있는 홍콩인에 대한 영사보호의무동 앞으로 중공의 협조를 얻어야할 사항도 많은것이다.
이러한 쌍방적인 조건이 맞아 떨어져 홍콩협상은 「합의」의길로 접어든것이다.
중공이 앞으로 공산주의사회속에 자본주의사회를 포용하는과제,즉 1국2체제를 어떻게운영해 나갈것인지 자못 관심사다.
【런던=이제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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