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편하라고 만든 노인석, 어르신은 왜 불편해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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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
고광애 지음, 바다출판사
273쪽, 1만3800원

선의로 시작한 일도 불편을 낳을 때가 있다. 지하철 노인석을 보자. 한 노인은 지하철을 타면 오도가도 못하고 출입문 옆에만 다소곳이 서있는다고 한다. 노인석에 앉으면 더 나이 많은 노인이 언제나 눈 앞에 나타난다. 그렇다고 일반석 앞에 서 있으려니 젊은이들더러 ‘일어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때문에 앉을 생각은 아예 안 하고 문 앞에 선다.

 저자는 노인석을 아예 없애자고 주장한다. 노인과 젊은이가 섞여 앉자는 뜻이다. 노인을 한쪽에 격리해놓은 것은 일종의 ‘유리벽’이다. 이런 유리벽은 노인들의 사방을 가로막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유리천장’만 있는 게 아니다.

 나이 든 이가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때다. 왜일까. 한 노인은 병원에 갈 때마다 메모 쪽지를 들고 간다고 한다. 자신의 지병, 치료 이력, 투약 상황 등을 꼼꼼히 적는다.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노인 환자들은 한 얘기를 또 하고 과장해서 아픈 곳을 얘기한다’고 생각하는 편견이 싫어서다. 그래서 할 얘기를 아예 문서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노인들이 할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것 또한 사회의 유리벽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에게만 유리벽을 걷어내라고 충고하는 책은 아니다. 노인이 예의있게 나이드는 법도 고민한다. 예를 들어 자식들의 무한 효심을 바라기 보다는 ‘효심 총량의 법칙’을 이해하자고 한다. 100세 시대에 끝까지 변함없는 효성을 바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또 자식들의 저녁 초대 등에는 ‘삼고초려에만 응한다’는 자신의 법칙을 공개한다. 이 밖에도 공부하고, 건강관리 잘하다가 깔끔하게 임종을 맞이하자는 얘기를 씩씩하게 펼쳐놓는다. 노인문제 상담가로 60대에 첫 에세이집을 낸 저자의 다섯 번째 책이다. 동년배에게는 공감을, 젊은 세대에게는 고령화 시대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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