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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국화빵·엿…별 것 다 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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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지난 26일 오후 1시 서울 상계동 은빛아파트 203동 앞.

아파트 입구 주변 도로에는 20여개의 천막이 길게 늘어서 있다. 천막에는 '추리닝 바지 5천원''면양말 5백원' '커튼 맞춤전문' 등 상품을 알리는 팻말이 곳곳에 나붙어 있다. 천막앞 좌판에는 각종 생선과 나물.과일 등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파는 상품은 어묵.떡볶이에서부터 채소.과일.생선.액세서리.침구용품.화분까지 수십종에 이른다. 옛날 시골장터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 매주 월요일마다 펼쳐지고 있다.

손녀 손을 잡고 '값이 너무 비싸다'며 상인과 가격을 흥정하는 할머니, 갓난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이리저리 다니며 채소와 야채를 고르는 주부, 엄마와 함께 노점에서 오뎅을 먹는 어린이 모습도 보였다.

도심지 아파트에서 알뜰장 형태로 '장(場)'이 부활하고 있다.

또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장돌림(속칭 장돌뱅이)'들이 모여 '전국5일장연합회'를 만들고 5일장을 부흥시키겠다고 나섰다. 전국5일장연합회 관계자는 "사라져가는 5일장을 알리고 이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단지에 알뜰장 확산=요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 몇 달 뒤에는 어김없이 들어서는 게 바로 알뜰장이다. 알뜰장은 아파트 단지에 일주일에 한번씩 서는 장(7일장)으로 보통 아파트 주차장이나 입구 도로변에 조성된다.

상인들은 부녀회와 개별적으로 6개월 또는 1년간 계약을 한 뒤 한달에 일정액을 '자릿세'로 주고 일주일에 한번씩 장사를 한다. 보통 오전 10~11시에 열리고 오후 6~7시에 문을 닫는다.

서울 아파트단지 5곳을 다닌다는 한 상인은 "서울 변두리 지역은 자릿세가 한달에 2만~3만원이지만 땅 값이 비싸고 단지가 큰 지역은 5만~10만원까지 한다"고 귀띔했다.

상인들은 일주일에 5~7곳의 아파트를 고정적으로 돌아다니며 단골손님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부녀회는 자릿세로 일정액을 받아 활동비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알뜰장이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다 뻥튀기.엿.튀김 등 주변 할인점이나 수퍼마켓 등에서 찾아볼 수 없는 추억의 상품도 팔아 주부들 사이에 큰 인기다.

알뜰장을 돌아다니면서 5년째 떡볶이.어묵 등을 판매하고 있는 한봉호(40)씨는"노점은 길거리 뜨내기 손님을 상대로 하지만 알뜰장은 단골고객을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어 좋다"면서 "일주일에 닷새,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만 장사하고도 한달 수익이 2백50만원 정도는 된다"고 말했다.

◇할인점보다 더 싸게 팔아=주부들은 알뜰장이 편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파트 앞에 장이 서니 바로 내려가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알뜰장에서는 집 앞까지 배달도 해주고 있다.

주부 황문희(35)씨는 "어린 아이가 있는 주부는 간단한 반찬거리를 준비하려고 할 때 멀리 가기 어렵다"면서 "알뜰장을 이용하면 가까운 곳에서 여러가지 물건을 살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다른 곳보다 싸고 반품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알뜰장의 인기 비결이다. 보통 이곳 물건은 할인점보다 10~20% 가량 값이 싸다고 한다. '동네 장사'인 알뜰장에서는 특정 가게의 상품 값이 조금만 비싸도 입소문이 빠른 주부들이 외면하기 때문에 최대한 싸게 팔 수밖에 없다.

특히 알뜰장은 옛날 장터처럼 흥정을 하면 좀더 싸게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서울 상계동 은빛아파트 부녀회의 임수진 총무는 "상인들이 제품을 너무 비싸게 팔거나 불친절하다는 불평이 있으면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부녀회에서 시정을 요구한다"면서 "상인들도 부녀회의 주장이 무리하지 않으면 대부분 들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부들에 따르면 알뜰장 상품의 질은 주변 대형 유통업체보다는 약간 떨어지는 편이라고 한다.

◇5일장 상인도 뭉쳤다=최근 5일장 상인들이 전국적인 연합체를 만들었다. 5일장 상인들은 지난해 전국민속5일장연합회를 만들어 전국 시.도별로 연합체도 구성했다.

5일장연합회 관계자는 "특정 지역에 5일장을 새롭게 형성시키기보다 기존 알뜰장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농산물의 산지 직거래망을 구축하고 공산품은 회원 공동구매를 통해 할인점 등에 비해 떨어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또한 대형 유통업체가 취급하지 않는 지역 특산물이나 토산품 등을 취급해 차별화할 예정이다.

5일장은 현재 전국에 6백50여개로 3~4년전보다 20~30개 줄어들었다.

현재 5일장을 돌며 노점과 행상을 하는 상인들은 1백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외환위기 이후 해마다 10% 가량씩 상인은 늘었지만, 5일장 위축으로 수입은 5년 전보다 30~40% 가량 줄었다고 한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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