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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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장에 갈때마다 제철을만난 게를 보고 『게장을 담가 봐야지 식욕이 없을 때는 한층 입맛을 돋우게할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며칠전부터 벼르다가 오늘은 작고 싱싱한 것을 골라 간장에 재워 두었다.
내가 어릴적 고향에서 어머니가 꽃게(몸통이 작고 전체가 빨간 빛을 띤)를 큰 항아리에 담아 사흘째 되는날 간장을 달여서 식혀 붓고 또며칠을 걸려 다시 반복하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무더위가 시작되고 모기가 극성을부릴 때면 동네 아주더니들은 꽃게를 잡아다가 주문한 집에 팔곤 했다.
하루는 나도 꽃게를 잡겠다고 따라 나섰다 무성한 갈대숲 사이로 줄지어 나와 있던 그 꽃게들이 인기척에 놀라 어느새 구멍으로 들어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개펄 바닥에 구멍만 있으면 불안하게 손을 집어 넣어 용케 잡을 때도 있지만 큰 발로 손가락을 물때면 처음 간 나는 소리소리 질렀다.
『그래, 못가게 말리던 엄마 말이나 듣지 기어이 따라와 가지고 고생만 한다』며 그 아주머니들은 나를 나무라기도 했다.
가난했던 그때의 생활로 꽃게를 잡다가 갈대밭에서 발을 다친게 파상풍이란 병이 되어 동네를 떠들썩하게 하고 네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난 인숙엄마의 아픈 기억도 생각난다.
십여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통학하며 지쳐 돌아온 내게 할머님이 『새로낸 게다. 어서 밥을 찬물에 말아같이 먹으렴』하고 내놓던 토요일 오후, 그 꽃게의 짭잘한 맛.
이곳에서 그 꽃게는 보이질 않고 무성하게 자란갈대잎들만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지금도 그 갈대밭은 변하지 않았을까?
간장에 푹 잠긴 게항아리를 열어보며 어릴때 먹던 꽃게맛이 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 <서울도봉구월계 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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