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넘치는 자원봉사자들|LA올림픽 앞으로 7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로스앤젤레스올림픽과 관련된 각 경기장이나 선수촌, 프레스센터, 그리고 이곳 올림픽조직위원회(LAOOC) 본부사무실을 방문하면 초록색 바탕에 옆구리쪽에 노란색 줄이 곁들인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초록색 운동모를 쓸 경우 이들은 얼핏 운동선수로 착각할만큼 스포티한 차림이다.
이들은 전부가 이번 올림픽을 위해 무보수로 일하는 자원봉사단들이다.
외국에서 왠만큼 큰 행사면 이같은 자원봉사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각국 취재기자들은 이들을 각 경기장, 선수촌, 프레스센터 어디서든지 정문에서부터 만난다.

<무얼 도와드릴까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무얼 도와드릴까요』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취재기자가 『실례하겠읍니다』 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다가와 용무를 묻는다. 그리고 아무리 먼 곳이라도 직접 앞장서 길을 안내하고 담당요원 책상 앞까지 데리고 가서 친절하게 인사까지 시켜준다.
외국에서 외국인을 처음 만나는 것이 서먹서먹한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편리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각 건물의 정문을 들어서면 LAOOC가 마련한 모든 시설에 이들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돼있어 기계를 돌보거나 서류작업을 하고 또 말벗이 돼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이들 자원봉사자들은『한국에서 온 기자세요? 88년 서울올림픽에도 가서 자원봉사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전혀 의례적이거나 지나가는 말이 아닌「진심」이라고 덧붙인다.
또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 어떨는지 모르겠다』며『돈에 여유가 생기면 서울에 가고싶다』고 말한다.
한국 취재기자에게 이들은『비행기표를 주면』이라는 말을 절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원봉사자가 비행기표 등 주최 기관에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면 이미 자원봉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남가주대(USC) 선수촌으로 한국선수단을 찾아갔을 때 만난「커트·클린치으」군(22·USC4년)은 흰 파나마 모자에 LA의 상징적 색깔인 푸른색 상의와 회색과 베이지색이 섞인 바지를 단정하게 입고 외국손님을 맞으면서 최선의 친절을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1시간가량 기다리는 동안「클린치오」군은 무려 12차례에 걸쳐 한국선수단 숙소와 연락을 취하며 오히려 『빨리 접촉이 되지 않아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자원봉사를 지원한 이유가 첫째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화가 돼 좋고 나중에 이 봉사경력이 이력서를 화려하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또 LAOOC에서 받은 각종 유니폼과 기념품을 두고두고 간직해 세계적 행사인 올림픽에 자신이 직접 참가했음을 오랫동안 기념하고 싶다고 했다.

<65세 할머니도 있어>65세난 흑인「마리엄·질레트」라는 할머니는 프레스센터의 팩시밀리실에서 매일 상오에 6시간 근무한다고 말하고 『팩시밀리가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고 즐거워했다. 「질레트」할머니는 또 EMS(정보전담체제) 컴퓨터실에서도 일해서 신문기자가 어떤 컴퓨터를 쓰고 있는지 손자들에게 자랑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무보수로 일하며 「사회참여로 스스로의 만족을 얻는 사람들」이다.
이번 LA올림픽에는 약 4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등록돼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의 위치는 위로는 LAOOC 주요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고위직은 물론 통역·호스트·호스티스·자동차운전·안내·홍보·청소 및 시설관리 등 아주 다양하다.
이 가운데 한국인 통역담당 자원봉사자는 25명. 「브라이언·안」「수지·오」박화자씨 등은 USC선수촌에서, 김승운양은 IOC총회가 열리는 빌트모호델에서 각각 통역 및 안내를 맡고있다.
9년전 서울 수송국교를 다니다 부모를 따라 마이애미로 이민간 김양은 이번 올림픽 기간중 노태우 한국올림픽조직위원장의 안내 및 통역을 맡게 되었다며 비행기로 6시간을 날아 LA까지 와서 자원봉사하고 있다.
LAOOC내 자원봉사자들은 보수를 받는 다른 요원들과 업무에서 조금도 차등대우를 받지 않는다. 자원봉사자들은 보수를 받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선택해서 하기 때문에」전혀 일에 대한 불만이 없다.
LAOOC의 자원봉사자는 신청서에 자신의 경력·학력·어학 능력 등을 기록하면 LAOOC의 간부들이 4차례에 걸친 인터뷰 후 적격여부를 통보한다.
적격판정은 ▲두나라 이상의 말을 할 수 있는가 ▲대인관계, 즉 엄마나 친절한가 ▲범죄경력이 없는가 ▲자원봉사에 대한 확고한 열의가 있는가 등 기준에 따라 내려지고 합격한 사람은 다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어학연구소에서 언어테스트를 받고 최종적으로 LAOOC에서 2주 훈련을 거쳐 실무에 배치된다.
자원봉사자에겐 근무시간이 2백50시간을 넘으면 LAOOC본부 건물 입구에 커다랗게 이름을 쓴 안내문을 붙여놓아「명예」를 높여주는 것이 유일한 보상이다.
미국사회의 이 자원봉사제도는 이른바 경험이 있거나 의욕이 있는 인력이 자신의 능력을 썩이지 않고 사회봉사에 활용한다는데 그 뜻이 있다. 이 제도는 좋은 일을 하고싶으나 돈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있는 각종 비영리 단체의 일을 활성화시키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남을 위해 일한다">
미국인들의 자원봉사 정신은 『나만 편하면 된다』는 것은 죄악이고 『남을 위해 내 스스로를 바치는 것이 선』이라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의 사랑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자원봉사가 부유한 나라의 여유있는 사람들이나 할수 있는 남의 나라 얘기라고만 할 수도없다. 왜냐하면 자원봉사자의 직업이나 사회적 계층이 널리 고루 분포돼 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힘든 막노동 가정의 주부도 자기집에서 가장 가까운 단체에 찾아가 하루 1시간 또는 2시간씩 안내나 행정·전화받기 등을 맡아 일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LA의 40만 한국인 가운데 자원봉사자는 그리 많지 않다.
생활의 여유나 학력·지식에 관계없이 남을 위해 일한다는 정신이 자원봉사에는 가장 중요하다고 자원봉사 경력 6년의 한 교포가 말했다.
이 한국인은 『88년 서울올림픽에도 자원봉사 인력이 아주 필요할 것입니다. 자원봉사자는 사무적이거나 딱딱하지 않아 많은 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가장 좋은 자산일수 있읍니다』고 했다.
자원봉사 정신은 가장 올림픽 정신에 가까운 것이라고 LA올림픽에 참가한 많은 자원봉사자들은 자부하고 있다.【LA=본사올림픽특별취재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