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서민들은 못 구해 연탄 많이 팔려도 안 반가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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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기업의 사장이라면 당연히 자기 회사 제품이 잘 팔리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 최대의 연탄 제조사인 삼천리E&E의 김영배(66.사진) 사장은 예외다. 그는 "최근 연탄 소비가 이상할 정도로 급증하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다"고 말한다. 원료인 무연탄은 물론, 일할 사람과 생산설비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연탄을 많이 판다고 이익이 많이 남는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 사장은 "연탄 공장은 이미 정상적인 경제원리대로 경영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보조금을 링거주사 삼아 생명 연장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탄이 사양산업으로 낙인찍힌 것은 이미 오래 전"이라며 "최근 소비 급증에 맞춰 생산설비를 늘리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덧붙였다. 삼천리E&E의 지난해 매출 50억원 중 20억원은 정부 보조금이다. 김 사장은 "상당수 탄광이 이미 폐광됐고 무연탄 재고도 한정돼 있다"며 "지금처럼 연탄을 소비하다가는 10년 쓸 것을 5년 만에 다 써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탄 소비가 계속 급증할 경우엔 공장문을 예상보다 빨리 닫아야 한다는 현실적 계산도 나온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김 사장에겐 회사의 이익보다 사회에 대한 염려가 더 커 보이기도 한다. 그는 "해가 갈수록 서민경기가 어려워지는 데다 기름값마저 폭등하고 있으니 값싼 연탄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 와중에 정말 연탄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연탄을 못 구해 추위에 떨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연탄 소비가 급증하는 것을 막고, 꼭 필요한 서민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우리나라 연탄산업의 산증인이다. 1966년 고졸사원으로 삼천리에 입사, 연탄 생산과장과 공장장을 거쳐 92년 연탄담당 이사에 올랐다. 2002년 회사가 연탄제조 부문을 포기하려 하자 "내가 해보겠다"며 직원 3명과 함께 공장을 인수, 독립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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