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덜 마시자" 역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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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위라는 타이틀에 얽매이기보다는 소비자의 요구를 채워주는 게 우선 아닐까요. 소비자를 현혹하는 무책임한 마케팅으로 단기간에 시장 점유율을 높이느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해서 찾는 충성도 높은 브랜드를 만들 겁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국내에서도 업계 1위에 오를 수 있겠지요.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고요."

조니 워커로 유명한 세계 1위 주류업체인 영국 디아지오사의 한국법인 디아지오 코리아 송덕영 회장(61.사진)은 윤리경영을 강조했다. 프리미엄 위스키 시장에서 단일 브랜드 1위인 조니 워커가 한국에서는 비교적 고전하고 있지만 조급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주류 사업은 술을 마시게 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이왕 술을 먹는다면 내 브랜드 술을 먹게 만드는 사업"이라며 "국민 건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사업확장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더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아지오 코리아는 이런 기업 철학에 따라 최근 중앙일보와 함께 술을 적당히 마시자는 '쿨 드링커 캠페인'을 펼치며, 올바른 음주문화 정착과 교육을 위한 웹사이트(www.cooldrinker.org)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술 파는 회사가 큰 돈을 들여 술을 덜 마시라는 취지의 캠페인을 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송회장은 "이번 쿨 드링커 캠페인은 단지 브랜드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광고전략이 아니라 사업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주류 사업의 속성상 생존.지속.번창하려면 윤리경영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 코리아 대표를 거쳐 아태 지역본부 사장을 지냈던 경력도 이런 인식에 한몫했다. 그는 "담배는 무조건 나쁘지만 술은 적당히 즐기면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못박은 뒤, "담배회사가 알고 있는 정보를 소비자와 공유하고, 소비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진작에 도왔더라면 소송을 당해 큰 손해를 보고 소비자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아지오 코리아 뿐 아니라 본사 차원에서도 사회적 책무라는 기업철학 아래 엄격한 내부 윤리강령을 두고 있다. 가령 디아지오 광고에는 25세 미만의 모델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25세가 넘었더라도 외모가 25세보다 어려보이면 기용하지 않는다. 또 술 마시는 걸 미화하거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활동은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경쟁이 치열한 주류업계에서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게 너무 한가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끊임없는 변신 노력"을 말하며 자신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80개의 위스키 원액공장 중 디아지오 공장이 27개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덕분에 어느 업체보다 다양한 블렌딩이 가능해 변덕스런 한국 소비자 입맛의 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안혜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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