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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썰전]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파헤쳐 보았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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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매거진] 올 상반기 최고 기대작이었던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원제 Avengers:Age of Ultron, 4월 23일 개봉, 조스 웨던 감독, 이하 ‘어벤져스2’)이 드디어 위용을 드러냈다. ‘어벤져스2’는 사전 예매율이 96%까지 치솟는 등 개봉 전부터 ‘1000만 영화’급의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호불호가 엇갈린다. 그래서 magazine M 기자들이 출동했다. 지구는 어벤져스가 지키고, 어벤져스는 우리들이 파헤친다.

K씨 드디어 개봉을 하고야 말았네요. 2편은 확실히 어벤져스 군단이 한 팀으로 결속한 모양새죠? 오프닝 장면이 그걸 잘 보여주더라고요. 어벤져스 군단이 테러 집단 히드라의 기지를 공격하면서 영화의 문을 열잖아요. 멤버들이 각자의 무기를 사용하며 한 명씩 등장하다 한 팀으로서 화면을 꽉 채우는 모습이 롱테이크로 잡히는데, ‘아, 내가 드디어 어벤져스 월드에 들어왔구나!’라는 생각에 짜릿했어요.

S씨 그런 건 정말 어벤져스만 만들 수 있는 장면 같아요. 개성이 뚜렷한 히어로 여럿이 뭉친 팀이니까요. 전편이 시리즈와 캐릭터를 소개하는 입문 과정이었다면, 2편은 심화 단계처럼 보여요. 각 히어로들이 서로 능력과 특성을 더 잘 파악하고, 관계도 돈독해지면서 역할 분담이 확실해진 거죠. 헐크(마크 러팔로)의 폭주를 막는 헐크버스터의 등장,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의 방패와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의 망치가 협업하는 그림은 한층 발전한 팀워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고요.

H씨 헐크와 헐크버스터의 대결은 원작에서 이미 등장했었죠. 만화 팬들이 영화에서 무척 보고 싶어했던 장면이었어요. 마치 다음 해에 개봉할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잭 스나이더 감독)에 등장할 배트맨(벤 애플랙)과 슈퍼맨(헨리 카빌)의 대결처럼 말이죠.

R씨 맞아요. 통제 불능의 헐크와 그를 제압하기 위해 헐크버스터 수트를 입고 나타난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싸움이야말로 가공할 파괴력과 통통 튀는 유머가 섞인 어벤져스 식 액션의 정수라 생각해요.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액션이었어요. ‘어벤져스2’에는 기존 어벤져스 군단 말고 새로운 캐릭터들이 대거 합류했잖아요. 새 캐릭터들의 활약은 어떻게 봤나요?

새 캐릭터의 등장, 어벤져스만의 액션

K씨 염력을 사용하는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의 존재감이 엄청나던데요. 캐릭터의 존재 이유도 명확하고요. 개별 시리즈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스칼렛 위치:내 머리 속의 염력’ 어때요(웃음). 게다가 지금 할리우드의 샛별인 올슨이 야무지게 연기하더라고요.

H씨 마블 원작 만화에서 스칼렛 위치와 비전(폴 베타니)은 부부가 되죠. 극 후반 비전이 스칼렛 위치를 구하는 장면은 원작을 의식한 팬 서비스인 것 같아요.

S씨 잠깐! 우리 비전 이야기는 뒤에 가서 합시다. 할 이야기가 아주 많다고요.

R씨 흠흠, 알겠어요. 남초인 어벤져스 군단에 여성 히어로가 새롭게 합류하다니!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입니다. 그에 비하면 스칼렛 위치보다 12분 먼저 태어난 초능력자 오빠 퀵 실버(아론 테일러 존슨)는 너무 쉽게 내팽개친 인상이에요. 스칼렛 위치의 들러리 같았어요. 아니, 존슨이 어디가 못나서!

S씨 그러게요. 캐릭터의 존재감으로만 보면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퀵 실버(에반 피터스)가 나았어요. 퀵 실버 활용은 20세기폭스가 윈!

H씨 저는 ‘아이언맨2’(2010, 존 파브로 감독)의 워 머신(돈 치들)이나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2014, 안소니 루소·조 루소 감독)의 팔콘(안소니 마키)처럼 각 개별 시리즈의 조연급 캐릭터까지 총출동한 점이 흥미진진했어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마블 영화를 이끄는 수퍼 히어로들이 풍부해진다는 생각을 했죠.

K씨 H씨는 확실히 ‘마블 덕후’군요(웃음).

R씨 마블 덕후가 아닌 일반 관객을 위해선 작품마다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만 보고도 이야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어벤져스2’가 그 책임을 다했는지는 의문이에요. 볼거리도 인상적이진 않았어요. 너 나 할 것 없이 입이 떡 벌어지는 진기한 볼거리로 무장하는 최근 블록버스터와 비교하자면 딱히 특·장점이랄 게 없었죠.

S씨 S씨 마블의 개별 수퍼 히어로 시리즈 액션의 총집합 같은 느낌이 없진 않죠. 아이언맨 군단이 떼로 등장하는 건 ‘아이언맨3’(2013, 셰인 블랙 감독)에서 봤고, 특정 공간을 통째로 하늘에 띄우는 그림은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에 나왔으니까요.

R씨 캡틴 아메리카가 승객을 위해 서울의 지하철을 멈추는 장면에서는 ‘스파이더맨2’(2004, 샘 레이미 감독)가 생각나던데요.

S씨 그래도 전 어벤져스 액션만의 매력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봐요. 개성과 무기에 따라 각자 역할이 아주 분명하죠. 지상전은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가 맡고, 공중전은 위젯을 탄 호크아이(제레미 레너)와 아이언맨 그리고 지상과 공중을 종횡무진하는 헐크와 토르까지. 이런 건 다른 시리즈에서 보기 어렵잖아요.

H씨 액션이 정교하게 설계되긴 했는데, 너무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동작 하나하나를 자세히 볼 수 없어 아쉬웠어요. 등장인물이 늘면서 캐릭터당 할당량도 줄었고요.

문제적 로봇, 울트론

R씨 액션보다 아쉬운 게 있어요. 아이언맨, 즉 토니 스타크가 만든 인공지능 로봇 울트론이요. 토니 스타크가 ‘이 시대의 평화’를 지키려 어벤져스 군단보다 더 강력한 인공지능 로봇인 울트론을 만들잖아요. 그 과정에 오류가 생겼죠. 의도한 것과 달리 울트론은 깨어나자마자 어벤져스와 인류를 멸망시키는 게 이 시대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 선언해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극 중 한국인 과학자로 등장하는 헬렌 조(수현)의 대사를 빌려 좀 물어봅시다. ‘울트론을 만든 건 토니 스타크인데, 울트론은 왜 어벤져스를 죽이려 하는 거죠?’

S씨 사실 논리는 단순해요. 그는 인류에겐 보호가 아닌 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이죠. 재미있는 점은 울트론이 그저 미치광이 인공지능이 아니라 어벤져스의 영향을 받고, 그걸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붙여나간다는 점이에요. 토니 스타크와 비슷한 말투를 쓰거나 그의 논지를 바탕으로 미래엔 금속(로봇)이 모든 것을 해결할 거라고 생각한다거나. 그래서 전 울트론이란 존재가 그를 창조한 토니 스타크의 죄책감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웠어요. 토니 스타크가 껴안고 있던 혼란과 고민을 나쁜 방향으로 극대화한 형태가 울트론인 거죠. 즉 울트론은 어벤져스의 두려움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악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편은 결국 히어로들이 각자 가장 두려워하는 내면의 어둠과 싸우고 있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죠.

K씨 저도 상징적으론 그렇게 읽었어요. 문제는 울트론이 왜 하필이면 어벤져스의 역기능을 반영했느냐는 거죠. 순기능도 있잖아요.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를 추상적인 대사 몇 마디로 설명하고 넘어가는데 ‘아니 어벤져스가 그동안 인류에 얼마나 나쁜 짓을 했기에?’라는 의문이 계속 남아요.

S씨 그래도 저는 울트론과 비전이 취하는 대립각이 흥미로워요. 극 후반 토니 스타크가 울트론의 대항마로 자신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자비스(폴 베타니·목소리 출연)를 바탕으로 또 다른 인공지능 로봇 비전을 만드는 거잖아요. 울트론이 어벤져스의 어두운 면을 증폭시킨 캐릭터라면, 그에 맞서는 비전은 어벤져스의 순기능을 대변하는 거죠.

R씨 하지만 울트론의 논리가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그에 맞서는 비전의 논리도 모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그게 극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인 요인 같아요.

비전은 과연 비전이 있는 걸까

K씨 저는 ‘어벤져스2’가 비전을 등장시키면서 극이 더 꼬였다고 생각해요. 울트론이 어벤져스의 어두운 부분, 즉 전쟁과 파괴 본능을 증폭시켜 만든 캐릭터라면, 어벤져스가 스스로 울트론과 대면해 그 어둠을 극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울트론으로 인해 어벤져스 내부에서 갈등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우리는 울트론을 이길 수 없다’며 비전을 만들어 마무리 짓잖아요. 그 바람에 어벤져스의 성장 이야기가 흐지부지돼요. 비전에게 숟가락 얹으며 마무리하는 것 같다고 할까.

S씨 저는 그 성장이 보이는 것 같은데요. 헐크가 죄의식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자신의 내면과 싸우며 혼란스러워하는 과정이 나오잖아요. ‘나는 과연 인류를 구하는 존재인가, 피해를 끼치는 존재인가’를 고민하면서. 그걸 전면에 내세우며 주제 의식을 압축해 보여줬다고 봐요.

K씨 헐크는 고민했을지언정, 나머지 멤버들은 고민하다 말아요.

R씨 결국 토르가 세상 모든 일을 비춘다는 ‘환영의 샘’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나머지 멤버들의 고민에 대해서는 스리슬쩍 넘어가는 식 아닌가요?

S씨 환영의 샘은 저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해요. 결국 비전이 탄생한 것도 샘에 들어갔던 토르가 ‘우리는 울트론을 이길 수 없어! 내가 봤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긴 하죠.

R씨 온갖 고민을 순식간에 풀어주는 그 샘 어디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웃음)! 저도 고민이 많거든요.

K씨 결국 내러티브에서 풀리지 않는 고리를 신(神) 토르에게 기댄 셈이네요.

H씨 한마디로 비전과 토르는 이 영화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죠. 그렇다면 ‘어벤져스’의 간판 스타 아이언맨의 활약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S씨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봐요. 이번 영화에 나타난 그의 두려움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료를 전부 잃는 상황이죠. 그래서 울트론을 개발하려 했던 거고요. 다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실수를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만회하려 계속 노력하는 거죠. 그게 위험을 무릅쓰고 비전을 만든 이유이고요.

K씨 오히려 저는 토니 스타크가 울트론을 만들 때부터 너무 확신에 차 일을 밀어붙이는 게 이상해 보였어요. 사실 ‘아이언맨’ 시리즈(2008~)에서 토니 스타크는 인간과 로봇의 관계, 윤리의 문제 등에 대해 계속 고민했잖아요. 그런데 왜 갑자기 로봇을 맹신하는 ‘미친 과학자’가 된 건지.

R씨 어벤져스 군단의 유머 담당인 그가 더 많이 웃겨주길 기대했는데….

H씨 그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도 토니 스타크와 캡틴 아메리카가 인공지능 개발 문제를 두고 주먹다짐을 벌이잖아요. 이건 두 사람이 격돌하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2016, 안소니 루소·조 루소 감독)를 위한 포석 같아요. 앞으로 마블 수퍼 히어로들의 세계는 더 암울해질 것 같네요.

R씨 가만 보면 이 영화는 하려는 이야기가 참 많아요. 울트론을 통해 어벤져스와 인류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스칼렛 위치의 초능력으로 어벤져스 멤버 개개인의 내면적 두려움을 들여다보지, 헐크와 블랙 위도우의 애타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기까지 하잖아요. 그뿐인가요? 호크아이의 가족이 등장하지,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저’에서 해체됐던 대 테러 조직 쉴드를 부활시키지, 호크아이가 스칼렛 위치에게 인류를 지키는 영웅의 태도를 깨우쳐주지…. 다 의미심장한데, 그 많은 이야기를 던지기만 하고 뭐 하나 제대로 매듭 짓지 못하는 느낌이에요. 그중 몇 가지 이야기만 골라 진득하게 풀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커요.

서울, 서울, 서울 그리고 헬렌 조

H씨 자, 이제 서울과 한국인 캐릭터 헬렌 조 박사 이야기를 해보죠. ‘어벤져스2’가 개봉 전부터 이렇게까지 화제가 된 건 영화에 서울이 나와서였잖아요. 헬렌 조 박사는 비전을 탄생시키는 데 쓰이는 ‘재생 크레이들’ 장치를 개발한 과학자로 나오죠. 나름 중요한 역할이지만, 존재감 자체는 미미해요. 캐릭터의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한 것 같아요.

R씨 첫 등장치고 그 정도면 무난한 것 같은데요. 마지막 장면에 얼굴을 비추는 걸 보면 다음 편에서 더 큰 활약을 할 것 같아요. 다들 서울 장면은 어떻게 봤어요?

S씨 확실한 건, 서울 촬영 장면이 지난해에 그토록 시끄럽게 발표됐던 것처럼 한국의 경제 효과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다는 겁니다. 한글 간판이 보인다는 것 정도만 빼면 어느 도시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K씨 게다가 ‘첨단 도시’처럼 보이지도 않아요. 서울시 등과 마블 스튜디오가 맺었던 양해각서엔 서울을 첨단 도시로 그리겠다고 나오는데 말이에요. 헬렌 조 박사의 연구소로 나온 세빛섬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인상이었어요. 10분 남짓 나온 것도 아쉽고요.

H씨 한강 옆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고가 도로는 외국인이 보기엔 흥미로운 풍경이지 않을까요?

R씨 정말 그런지 TV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2014~, JTBC) 멤버들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서울의 골목골목에 붙은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촌스러워 보였던 건 저뿐인가요? 외국 관객에게는 이국적인 풍경으로 보이려나.

S씨 저는 서울 분량과 묘사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과열돼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묻고 싶네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서울에서 촬영한다는 것만으로 영화 내용이 공개되기도 전부터 모든 뉴스가 서울 얘기와 관광·경제 효과로 도배되는 것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K씨 어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한국이 나오면 보는 재미는 있잖아요. 다른 블록버스터의 주인공도 서울에 촬영하러 왔으면 좋겠어요. DDP나 광화문, ‘치맥’ 전문점, 김밥천국 등의 장소를 추천합니다(웃음).

R씨 그렇다면 제가 그 히어로에게 김밥천국에서 떡볶이를 사도록 하죠. 라면 ‘사리’ 듬뿍 넣어!

H씨 DC의 수퍼 히어로들이 한국에 온다면 어떨까요? 수퍼맨이 63빌딩을 지나쳐 날거나, 배트맨이 남산 타워 꼭대기에 쭈그려 앉은 모습을 꼭 보고 싶네요.

R씨 자, 그럼 다음에는 어떤 히어로가 서울을 누빌지, 그 답을 얻으러 환영의 샘으로 다 함께 목욕하러 갑시다(웃음)!

글=김효은·장성란·이은선·고석희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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