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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길, 총장이 답하다] 정갑영 “등록금·입시 규제 없는 자율형 사립대 허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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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지난달 27일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선 세계 100대 대학이 10개 정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연세대가 9일 창립 130주년을 맞는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뉴턴 알렌이 세운 광혜원이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효시다. 1915년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세운 연희전문학교는 57년 세브란스와 통합해 연세대가 됐다.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사립대를 이끄는 정갑영(64) 연세대 총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신촌캠퍼스 집무실에서 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역만리 조선 땅에 와 기부와 헌신으로 대학을 세운 창립정신을 되살리겠다”며 “소외계층을 위한 입시부터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만 ‘한마음 전형’에서 뽑아 왔는데 소득분위 기준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등 지금보다 많은 학생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설명했다.

 정 총장은 이어 “소득이 낮은 가정의 학생들을 많이 받게 하려면 등록금 책정과 입학전형에서 일정 수준까지 대학에 자율성을 주고 책무를 부여하는 ‘자율형 사립대’ 모델을 정부가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은 대학에 대한 정부 규제가 너무 많아 우수한 학생을 뽑기도 쉽지 않고 소외계층에 실질적 혜택을 주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소외계층 학생에게 입학 문호를 넓히려는 취지는.

 “학문적 수월성과 사회적 형평 추구 두 가지가 세계 모든 대학의 사명이다. 과거엔 소외계층 학생들이 대학을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삼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신분을 고착시키는 수단이 됐다. 좋은 대학일수록 저소득층 학생의 비율이 낮다. 연세대는 창립정신에 맞춰 특히 사회 공헌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도 안정된다.”

 -입시를 어떻게 바꿀 건가.

 “기초생활보호대상자만 뽑고 있는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그 이상의 소득분위로까지 확대하려 한다. 기존 전형은 지원자가 적은 데다 학력 수준이 낮아 입시를 통과하지 못해 정원을 못 채우는 형편이다. 실업계고 출신도 취직 후 대학에서 공부할 길을 넓혀줄 계획이다. 작전 중 숨진 군인의 자녀 등 소외계층의 입학을 전반적으로 늘릴 생각이다.”

 -이들에게 요구하는 대입 학력 기준도 낮출 건가.

 “대입에서 소외계층을 배려할수록 학력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입학 후 기초교육을 추가로 시켜야 한다. 장학금도 많이 줘야 하니 재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의 대학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반값 등록금의 목적도 소외계층에 혜택을 더 주자는 것일 거다. 그런데 지금처럼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고 대학에 합격할 경우 정부가 소득계층에 따라 장학금을 주는 방식으론 진정한 신분 상승을 제공하기 어렵다.”

 -자율형 사립대는 어떤 시스템을 염두에 둔 건가.

 “정부가 일부 대학을 자율형 사립대로 지정해 등록금과 입시에서 자율성을 주되 소외계층을 뽑아 교육시키는 사회적 책무를 부여하자는 거다. 지금은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 해도 정부가 규제해 어렵고 등록금도 수년째 동결하거나 내린 상황이다. 고등학교에도 자율형 사립고가 있는데 대학에 없다. 유럽은 정부가 지원해 주니 사립대가 거의 없고 등록금도 싸다. 미국의 경우 주립대는 등록금이 싸지만 사립은 우리의 네댓 배다.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등록금을 현 상태로 유지하도록 하면 어떻게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 수 있겠는가.”

 -입시 등에서 어떤 자율성이 필요한가.

 “학문적 수월성도 중요한 가치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이 여러 가지 기준을 적용해 학생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 80~90%는 아주 우수한 학생을 뽑고 그 나머지는 소외계층에 기회를 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부의 대학 구조 개혁 작업은 어떻게 보나.

 “학령 인구가 줄기 때문에 대학 정원을 줄여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수퍼마켓에 상품을 진열해 놨다가 뭔가 빼야 한다면 고객이 안 찾는 것부터 빼야 하지 않겠나. 기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많다. 그런데도 인위적으로 모든 대학에 몇 %씩 줄이라고 하면 결국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된다. 지방대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와 관련해선 정부가 개입해 지방의 거점 대학을 육성해줘야 한다. 자율형 사립대는 정원을 알아서 하게 하고 지방엔 거점 대학을 육성하는 정책을 정부가 폈으면 한다.”

 -송도 레지덴셜 칼리지(기숙형 대학)가 2013년 도입됐는데 반응이 어떤가.

 “지난해부터 모든 1학년생이 1년 동안 송도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레지덴셜 칼리지에선 5가지 ‘C’를 강조한다. 창의력(Creativity), 소통(Communication), 융합교육(Convergence Education),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 기독교적 가치관(Christianity)이다. 이런 소양을 갖춘 인재를 기르기 위해 핀란드의 알토(Aalto)대가 시작한 창업교육 시스템인 ‘디자인 팩토리’를 지난달에 도입했다. 핀란드·호주·칠레·중국·스위스에 이어 여섯째로 송도 캠퍼스에 문을 열었다. 네모난 마이크도 알토대에서 가장 먼저 만들었는데, 미래형 산학협력의 장으로 학생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부터 제품 설계와 생산까지 해 볼 수 있다. 나머지 5개 나라 학생들과 실시간으로 의견도 공유할 수 있다.“

 -한국 대학이 나아가야 할 길은.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선 세계 100대 대학이 10개는 나와야 한다. 정부가 대학에 일정한 자율권을 줘야 가능한 일이다.”

만난 사람=강홍준 사회1부장, 정리=신진 기자 ji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정갑영=1951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제학부에 진학했다. 졸업 후 한국은행에 취직했지만 2년 만에 그만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경제학)를, 코넬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경제학)를 받았다. 35세가 되는 해에 연세대 교수로 부임했다. 연세대에서 교무처 처장, 경제연구소장, 원주캠퍼스 부총장 등을 거쳐 2012년 총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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