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교안보 라인, 더 늦기 전에 쇄신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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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02면

한국 외교가 격랑에 휩싸였다. 과거사 문제에 집착하는 사이 동북아에서 외톨이가 돼 가는 양상이다. 이른바 ‘과거사 동맹’을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파트너로 봤던 중국은 어느새 명분보다 실리로 돌아섰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이어 지난달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두 번째로 일본과의 정상회담에 응했다. 우리 정부가 ‘역사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미국에서 최고의 환대를 받았다. 중국 견제에 급한 미국의 속사정을 활용해 일본의 입지를 넓히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 미국은 일본의 손을 높이 들어 줬다.

 미·중·일의 움직임에 과민반응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무엇보다 이런 흐름을 미리 예견하고 적절히 대응해야 할 외교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 비해 외교안보 분야의 경험은 부족한 편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외교안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스스로 컨트롤타워가 돼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결정에 이르는 과정엔 전문적 식견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전략가들의 토론과 조언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통령 주변엔 이런 역할을 할 키맨(key man)이 보이지 않는다.

 조직상으로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이를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그의 전문 분야다. 국방에만 몸담았던 그가 외교·통일 등을 망라하는 사령탑을 맡기에 과연 적절한가 하는 지적이 지난해 6월 임명 때부터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외교가 복잡 미묘하고 중요한 시점에선 더욱 그렇다.

 한국 외교의 얼굴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연신 코너에 몰리고 있다. 특히 외교 성과를 자화자찬하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 결코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될 수 없다. 굳이 말한다면 이것은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발언은 국민의 눈높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안보 분야 당정협의회에서도 “한국 소외론이나 외교 전략 부재라는 비판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했다. 현재의 엄중한 상황 인식과는 동떨어진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인적 쇄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박 대통령은 새 국무총리를 인선해야 한다. 차제에 외교안보 라인의 인사도 동시에 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이를 국정에 반영했다고 한다. 민간의 역량을 총동원해도 모자라는 상황에서 귀를 열고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아울러 외교 인프라 구축에도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본은 미·일 인적 교류 프로그램인 ‘가케하시(가교) 이니셔티브’에 30억 엔(약 27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미국 내 지일파 육성작업을 강화한 것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사사카와(笹川)재단 등을 통해 민관 합동으로 치밀하게 대외 로비·홍보를 해 왔다. 아베 총리가 미국 오피니언 리더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대미 공공외교 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외교에 대한 깊은 식견을 갖춘 전문가들의 얘기를 오래전부터 듣고 실행했다면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던 분야다. 결국 외교도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통령의 임기가 곧 반환점을 돈다. 더 늦기 전에 외교안보 라인의 인적 쇄신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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