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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에 민화 그렸더니 전통 목가구와 안성맞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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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30면

“공예의 한계를 탈피해 보고 싶었어요.”

‘도자기와 나무의 Collaboration’ 전 4월 29일~5월 4일 인사아트센터

29일 오후 서울 인사아트센터. 지민아트 포슬린페인팅 아카데미 회원전에는 각양각색의 나무 테이블이 즐비했다. 도자기에 색을 입히는 포슬린페인팅 전시에 웬 목가구인가 싶은 생각도 잠시, 다가가서 보니 그냥 목가구가 아니라 하나하나 색다른 도자기 타일을 품고 있다. 하얀 백자를 캔버스 삼아 매년 전시를 통해 도자와 회화의 새로운 만남을 선보이고 있는 승지민(49·사진) 대표와 지민아트 소속 35명 작가들이 직접 디자인한 작품들이다.

“지금껏 포슬린페인팅이 기물에 그림을 그리는 기술적 공예에 그쳤다면 각자 개성대로 가구를 짜고 타일을 배치하는 과정이 작가들에게 디자인과 예술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된 것 같아요.”

포슬린페인팅이란 유약을 입힌 백자 위에 다양한 색으로 그림을 그려 넣는 도자공예. 17~18세기 이래 유럽과 중국, 일본에서 화려한 자기 문화를 꽃피운 대표적인 장식기법이지만 한국에 도입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2002년 공방을 열고 포슬린페인팅 대중화에 앞장서 온 승 대표는 “전시회 때마다 새로운 테마를 기획하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가구 디자인 분야에 도전하게 됐다”고 했다.

그가 내놓은 대표작은 문자도(文字圖) 가리개. 여덟 폭 병풍에 자주 등장하는 민화 ‘문자도’를 여덟 장의 타일에 그리고 나무틀에 끼워 넣은 두 폭 짜리 가리개를 직접 디자인해 제작한 것. 여덟 장 타일의 그림은 ‘효(孝)·제(第)·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여덞 글자에 해당하는 고사와 관련된 이미지를 담았다. 민화를 그대로 모사한 게 아니라 글자 속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풀어내 화폭에 조화롭게 구성했다. ‘효’자에는 얼음을 깨고 나와 펄떡이는 잉어를 배치하고, ‘의’자에는 도원결의를 연상시키는 복숭아나무를 화려하게 곁들이는 식이다. 격조 넘치는 동양화 8점이 두 폭 가리개에 넉넉히 담긴 셈이다.

“민화의 문자도는 병풍에 많이 쓰이는 그림인데 현대적 감각은 좀 떨어지는 면도 있잖아요. 모던한 인테리어와 어울리게 재구성해 본 거죠.”

승 대표는 그간 유럽 자기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온 포슬린페인팅을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미를 재발견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순백의 달항아리에 화려한 색감으로 모던한 그림을 그려넣은 작품들을 국제 컨벤션에 선보여 외국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간 달항아리를 재해석해 왔다면 요즘은 민화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어요. 전통 목가구와 접목하니 목가구 자체도 현대적으로 거듭나는 효과를 보고 있고요.”

승 대표의 가리개는 이미 입소문을 타고 주문 제작 의뢰가 줄을 잇고 있다.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한국적인 멋을 보여주고 싶은데 전통 병풍을 갖다 놓을 수도 없으니 제격이래요. 회원들도 참여하는 가구브랜드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회원들의 작품도 개성적이다. 타일 형태의 로열 코펜하겐 서빙접시에 직접 디자인한 세계지도 문양을 그려넣은 테이블은 “우리 집에 필요한 커피 테이블에 내가 좋아하는 지도를 그렸다”는 이승현씨 작품. 2002년 포슬린페인팅을 시작해 전문강사로 활동중인 이씨는 “포슬린 작품이 관상용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실용적이다. 타일에 맞게 가구를 디자인하는 작업과정도 의미있었다”고 말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n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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