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지한이, 처음 잡은 돌 "바둑 배우니 재미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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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곡동 동그라미 유치원에서 월요일마다 열리는 ‘2015 유치부 바둑교실’. 장인지 바둑 지도사(가운데)는 “바둑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다른 교육 프로그램과 차별화된다”며 “놀이와 바둑을 접목한 수업으로 아이들이 먼저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검은 돌을 한번 들어볼까요?”

 27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 ‘동그라미 유치원’. 아이들 10여 명이 가로 세로 아홉 개의 줄이 그어진 바둑판 위에 흑돌을 올려놓는다. 바둑돌을 처음 잡아든 아이들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바둑돌을 놓치지 않으려 고사리 같은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김지한(6)군은 “바둑을 유치원에서 처음 배우는데 재미있다”며 “바둑돌은 부드럽고 바둑판은 딱딱했다”고 말했다.

 이어 흑돌과 백돌을 나란히 놓아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바둑돌을 줄 세우기 시작한다. 한참의 시도 끝에 삐뚤빼뚤 어설프게 바둑돌이 한 줄로 정리됐다. 이제야 만족스러운 듯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한지완(6)군은 “할아버지께 바둑을 배운 적 있는데, 바둑돌을 만지면 느낌이 좋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동그라미 유치원생들이 가로 세로 9개 줄이 그어진 바둑판 위에 흑돌과 백돌을 채워넣고 있다.

 매주 월요일, 동그라미 유치원에서는 바둑교실이 열린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30분씩 바둑 지도사의 수업을 들으며 바둑과 친해진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현재 전국의 6세 유아 2740명이 유치원 혹은 어린이집에서 바둑을 배우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고 한국기원이 시행하는 ‘2015 유치부 바둑교실’을 통해서다.

 3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되는 이 수업에는 전국 225개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지원해 최종 49곳이 선정됐다. 선정된 곳에는 바둑 지도사가 파견되고, 바둑 교구와 교재도 무상 제공됐다. 강현덕 동그라미 유치원장은 “평소 바둑의 즐거움이나 효과를 잘 알고 있어 언젠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가 와서 지원했다”며 “앞으로 아이들의 정신적 발달 측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바둑 수업이라지만 처음부터 바둑 두는 기술을 가르치는 건 아니다. 기술을 가르치기에 앞서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바둑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과정이 선행된다. 특히 대국 시 자세와 예의범절 등을 중점적으로 교육한다. 장인지 바둑 지도사는 “바둑과 관련한 상식과 대국 예절 등을 먼저 가르치고 3개월 뒤에 바둑을 두는 기술을 가르칠 계획”이라며 “아이들이 바둑에 집중하는 시간을 차츰 늘리는 데 초점을 두고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치부 바둑교실의 목표 중 하나는 숨겨진 바둑 영재를 발굴하는 것. 모든 분야가 그렇듯 바둑도 입문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조훈현 9단과 조치훈 9단은 일곱 살이 되기 전 일본 유학에 나섰고, 잘나가는 프로기사 대부분이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바둑을 접했다.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바둑의 성장 역시 조기 교육으로부터 시작됐다. 어린 나이에 바둑을 접할 기회를 늘려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바둑의 시급한 과제인 셈이다.

 물론 유치부 바둑교실의 목표가 바둑 영재에 한정된 건 아니다. 바둑으로 성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바둑은 유아의 두뇌 개발과 인성 교육, 사고력 증진 등에 효과적이다. 강나연 바둑인성교육연구위원회 상임연구원은 “한 판의 대국을 하는 과정이 종합적인 인성 교육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며 “바둑을 두면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방법을 배우는 동시에, 상대방의 생각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법도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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