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깊이보기] 인물이 살아야 드라마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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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두 미니시리즈의 운명이 대조적이다. 지난 25일 종영한 특별기획드라마 '천년지애'(사진 (上).극본 이선미 김기호, 연출 이관희)와 29일 종영하는 드라마스페셜 '술의 나라'(극본 이향희, 연출 이진석) 얘기다.

첫 회가 나간 후 조악한 사극 장면으로 "이런 게 소위 퓨전 사극이냐"는 비난을 받았던 '천년지애'는 주인공 성유리의 대사가 장안의 화제가 되는 등 높은 관심 속에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반면 전통주 제조 모습을 소개하며 산뜻한 출발을 한 '술의 나라'는 마지막 회를 남겨둔 현재 시청자 게시판에 "쓸 만한 배우들로 이렇게밖에 못 만드느냐"는 힐난이 가득하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일단 인물들의 생동감이란 측면에서 희비가 엇갈렸다고 본다. 사실 주연배우의 연기만 놓고 보면 '술의 나라'팀이 앞섰다. '천년지애'의 경우 청초한 얼굴의 성유리가 커다란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나름대로 기품있는 공주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했지만 1천3백여년의 시공을 넘나드는 공주의 복잡한 캐릭터를 온전히 보여주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지애'의 인물들은 살아 있었다. 그것은 현실성과는 다른 차원이다. 주인공들은 팬터지와 코미디, 그리고 멜로의 적절한 결합 속에 서로의 관계에 팽팽한 긴장감을 주며 움직였다.

현대로 떨어진 공주가 "나는 남부여(백제)의 공주 부여주다"라고 외치며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쓸수록 다른 사람들 눈에는 코미디로 비치는 것이라든가, 과거 공주의 원수였던 김유석과 꼭 닮은 다쓰지가 지순한 사랑을 바치면서 마음을 열고자 하는 것 등이 그렇다.

이에 비해 '술의 나라'는 처음부터 준(김재원)과 선희(김민정 분), 도일(이동욱 분), 그리고 애령(최강희 분)의 관계가 뻔했던 데다, 인물들의 행동유형이 바뀌는 데 수긍이 가지 않는 대목이 많았다.

초반부인 6회부터 작가가 바뀐 것도 인물들의 성격 전개에 다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진석 PD는 "전통주라는 소재가 색다르긴 했지만 보편성이 부족해 시청자들과 소위 '코드'가 안 맞았던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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