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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서 꾸어쓴 쌀 현금상환이 유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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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쌀을 일본에 수출하는 문제를 놓고 한일간의 교섭이 진행 중에 있다.
일본측이 요구하는 내용은 과거 한국에 꿔준 쌀을 현재와 같은 현금상환이 아닌 현물로 갚아달라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69년부터 80년까지 총1백60만3천t의 쌀을 현물차관형식으로 꾸어왔다.
△69년 35만t △70년 30만t △76년 12만t △80년은 4차례에 걸쳐 7만t, 8만8천t, 15만t, 52만5천t씩이다. 이 쌀의 대부분이 10m년 거치 20년 분할, 현물상환 조건이었다.
이같은 조건에 따라 거치기간이 끝나 80년부터 상환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해에 다시 우리나라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갚을 쌀이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이에 따라 한일양국은 양곡차관협정을 개정, 현물대신 현금으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현금환산가격은 태국의 무역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기준싯가 t당 2백35달러였다.
현금상환이 가능하도록 협정을 고치면서 양국은 어느 한쪽의 제의가 있으면 현물상환으로 환원하는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
일본이 지금 현물상환을 요구하는 것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있는 것이다. 일본이 현물상환을 요청하는덴 그만한 사정이 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쌀 과잉으로 골치를 앓았다. 그래서 감산정책을 실시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4년 전부터 기상이 좋지 않아 잇달아 흉년이 들었다. 지금 일본측이 한국에 호소하고있는 식량사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할지는 모르나 금년 10월이면 일본정부 보유미가 10만t (70만섬)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정부미보유 적정량을 9백만섬으로 잡고있는 점과 일본인구가 우리의 3배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절박한 문제인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정부보유미는 국내산 1천4백77만섬과 도입쌀 70만섬등 총1천5백47만섬. 농가보유미를 합치고 연간소비량 (3천5백만섬)과 비축분을 빼면 결국 1백70만섬 (24만5천t)은 여유가 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부미를 쌓아놓고 있는 바람에 양곡적자가 누증돼 작년 추수후부터 정부미소비촉진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우리정부는 현물로 되돌려달라는 일본요구를 선뜻 응낙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도 금년 작황을 낙관하지 못하고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여유가 있다고 쌀을 내주었다가 흉년이라도 들면 보통문제가 아니다. 77년 풍작때 인도네시아에 7만t의 쌀을 수출했다가 그 다음 흉년이 들어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또 지금처럼 현금으로 갚는 게 금액상 훨씬 유리하다. 현금은 t당 2백35달러 (가마당 1만5천원)지만 현물로 갚으려면 재무부가 농수산부에 정부수매가격에 보관비등을 합쳐 t당 8백77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고 매입해서 갚아야한다. 그만큼 재정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더군다나 일본이 처음에는 금년부터 86년까지의 상환분 10만8천t을 한꺼번에 갚아달라고 요청하더니 교섭과정에서 요구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환해야할 전체물량 52만t의 절반인 26만t을 제시하고있다는 얘기도 나오고있다.
그렇지만 한국측으로서는 일본요구를 딱부러지게 거절할 수 없는 몇 가지 사정이 있다.
우선 어려울때 도와준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가장 쌀 사정이 어려울 때 일본의 도움을 받았다. 또 일본과는 여러 현안문제들이 얽혀있다.
최근 관계장관협의에서도 외무부측은 일본요청에 호의적 배려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나까소네」일본수상의 방한으로 다져진 한일우호관계가 이어져 금년에는 전대통령의 방일이 예정돼있다.
일본요청을 부분적으로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다만 우리 정부는 한국기상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기 위해, 그리고 물량을 줄이기 위해 조급하지 않게 시간을 두면서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태도다. 일본의 요청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느냐는 정치적 결단에 속하는 문제다.
이와 곁들여 정부가 우려하는 것은 현물상환조치로 인해 혹시 미일간의 분쟁에 휩쓸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대일무역역조에 대해 기회있을 때마다 일본의 수입규제를 비난해온 미국이 최근 『미국은 일본에 쌀을 공급할 준비가 돼있다』고 나선 점을 정부는 유념하고 있다. <한남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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