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잡주에 독립왕국건설 꿈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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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십 년에 걸친 인도정부와 시크교도간의 종교분쟁은 올 들어 희생자가 2천명을 넘어서는등 내전을 방불케 하는 양상으로 확대되고있다.
사태가 걷잡을 수없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지난 6일 실시된 인도군의 황금사원 침공 때문. 정부군은 6일 상오 탱크와 박격포를 동원, 시크교의 성지 황금사원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과격파 시크교도 1천명을 살해했으며 이 와중에 『시크교의 호메이니』로 불리던 「자르나일·싱·빈드란왈레」(38)가 시체로 발견됐다. 그는 온건파가 주도하는 자치권확대운동에 만족하지 않고 제정일치의 독립국가 「카리스탄」(시크교의 왕국)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을 이끌어왔던 시크교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시크교는 회교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은 힌두교개혁파로 15세기 「나나크」가 그 시조.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유일신을 섬기며 카스트제도를 부정하는 종교·사회개혁운동이었다. 무갈제국의 탄압을 겪으면서 전투집단으로 변모, 18세기말에는 인도 북서부일대에 시크왕국을 건설했다가 19세기에 영국과의 전쟁에 패해 영국령에 편입됐다.
긴 수염과 머리에 두른 밝은 색 터번이 특징인 시크교도의 수는 1천3백만명으로 대부분이 펀잡주에 모여 살고있다.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펀잡주의 부를 다른 지방에 나누어주기 싫다는 경제적 이유를 이면에 깔고 올 들어 더욱 심해지기 시작한 테러활동은 지난 4월 힌두교정치인 2명과 온건파시크교지도자 1명을 암살함으로 「간디」정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인도정부는 곧 펀잡주를 소요지역으로 선포하고 야간통금을 실시해 강력히 대응하는 한편 온건파 아칼리달당에 대해서는 헌법을 개정해 시크교를 독립종교로 인정할 용의가 있다는등 회유책을 펴면서 과격파와 온건파의 분리정책을 썼지만 과격파의 테러강화로 실패로 돌아갔다.
따라서 펀잡주에 대폭적인 자치권을 허용할 경우 종교·언어가 다른 7개 소수민족들이 들고일어나 인도가 공중분해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간디」정권은 야당의 지원에 힘입어 결국 무력사용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인도정부는 비극적이지만 불가피했던 사태라는 입장을 취하고있지만 내년 1월의 총선거를 염두에 둔 『대청소작전』이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간디」로서는 발동의 불은 끈 셈이지만 자칫하면 전 시크교도가 적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또 동구권국가들은 시크교의 배후에 미국과 파키스탄이 있다고 비난하고 나섬으로써 내란에 시달리는 「간디」정권에 무거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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