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제는 왜 패망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우리나라 역사상 수수께끼의 하나는 어찌하여 그렇게 강하던 백제가 하루아침에 망했는가 하는 것이다. 당에 대한 외교실패, 의자왕의 교만등이 제시될 만한데 최근에 필자가 백제기록을 조사하다가 또하나 중요한 패망원인은 간첩들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여 포로를 잡아오는 이유중 하나는 신라에 잡혀죽은 성왕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인데, 이때에 신라에서 현령을 살던 조미곤이라는 사람을 잡아다 당시 백제의 대신이며 국사를 주무르던 임자좌평의 종으로 부렸다.
그런데 이자가 부지런하고 영리하니까 임자가 후에 비서로 발탁하여 썼는데, 조미곤은 백제의 중요한 서류를 마음대로 다루는중에 백제의 실정을 낱낱이 알고는 문득 신라생각이나서 말없이 신라로 가 김유신장군을 만났다. 중대한 적국의 비밀을 입수한 김유신은 그때 비로소 백제정복의 구체적 설계를 세우고는 조미곤에게 지시하기를, 『다시 백제에 가서 네 상관 임자를 포섭하라. 나라의 운명은 알기 어려우니 만일 신라가 먼저 망하면 김유신을 임자가 받아서 살려주고, 백제가 그렇다면 임자의 생명을 김유신이 보장한다는 조건을 제시 하라』고 하였다.
이들 두사람은 당시 정보책임자들이었다. 조미곤은 돌아와서 이말을 하였고, 임자는 두달후에 이 제안을 수락하였다.
이 다음에 임자 조미곤은 역사에 등장하지 아니한다.
또 다른 얘기가 있다.
신라군이 지금 금산인 탄현을 넘지 않도록, 당군이 지금의 금강입구인 기벌포를 넘지 않도록하는 「탄현-기벌포 방어론」을 성충과 흥수가 제시하였을 때 이를 묵살한 대신들이 있었다. 상영이 그 하나였다. 적이 출동하여 국경선에 도착하였다고 하는데 어전에서는 헛된 입씨름만 벌여 국가존망의 중대시기에 나흘을 허비하여 적이 무사히 탄현과 기벌포를 넘게한 대신 달솔 상영과 좌평 충상은 결사대대장 계백장군을 도우러 출전하였다가 온전한 몸으로 신라군의 포로가 되더니 석달후 서기660년11월22일에 신라군사의 논공행상때 유능한 백제인으로 인정받아 신라고관인 일길손이 되고 또 충상은 석달후에는 이손이 되더니 마침내 백제 부흥군을 토벌하는 부대의 부사령관에 이른다.
나당군의 손을 벗어나 순결을 지키려고 삼천궁녀가 낙화암에 떨어지던 시절에 이러한 백제 대신이 있었다는 것은 신라의 간첩공작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무엇으로 설명할까.
최내옥(한양대교수·국문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