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변경 있을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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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림픽은 이대로 양분되고 말 것인가. 올림픽의 존속을 위협하는 거센 정치바람, 또 힘의 양극화 현상을 막을 길은 없는가.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개막을 눈앞에 두고 몰아친 소련 등 공산 블록의 보이코트 회오리 속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비롯, 세계 스포츠계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인지 난감할 뿐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격으로 초강대국의 정치게임 때문에 오랫동안 땀흘려 닦은 실력을 겨룰 승부의 기회를 잃어버린 스포츠맨들은 올림픽 파괴행위를 규탄하면서 한숨만 짓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그리스 영구개최나 5대륙 경기장 고정 순회 등 몇 가지 구제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IOC의 몇몇 관계자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발언들이 갖가지 억측을 불러 88년 서울올림픽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최근에 야기된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 비추어 서울올림픽이 변경 또는 연기될지도 모른다』는 「쿠마르」 IOC 부위원장의 말이 물의의 한 예.
또 서울올림픽 TV중계권 협상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일본 매스컴은 마치 IOC가 서울개최를 재검토하기라도 한 듯 요란스럽게 떠들어댔다.
인도인 「쿠마르」 부위원장의 발언진위는 어떻든 그가 처음부터 서울올림픽 개최를 반대했고 지난 2월 평양을 다녀온 뒤로 한국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온 친 공산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러한 악의적인 개인발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또 나고야가 서울과의 유치경합에서 완패한 뒤 일부 일본언론이 질시의 선을 넘어 국내의 찬반론을 들먹이며 비방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상황은 88 서울올림픽과 관련해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미소의 역학 관계, 특히 최근의 냉각상태에서 비롯된 국제정치의 난기류를 생각할 때 올림픽의 탈 정치를 위한 비상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세계 여론이고 보면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시사하는 것처럼 올림픽의 어떤 체제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부터 추진·해결해야할 과제이지 4년 후의 계획변경이란 시기적으로 이미 불가능한 일이다.
유럽 의회는 올림픽의 그리스 영구개최를 지지했는데 그 시기는 12년 후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있다.
3년 전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서울이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설정되었을 때 「사마란치」 위원장을 비롯한 IOC의 리더들은 『올림픽이 강대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에서 열리는 것은 올림픽 이상을 구현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만족을 표시했다.
정치 색이 가장 짙었던 모스크바대회나 지나친 상업주의로 비난의 대상이 된 LA대회와 달리 서울대회는 올림픽의 순수성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이를 부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72년 뮌헨 참극 이후 올림픽은 걷잡을 수 없는 시련에 휘말렸다. 80년에 이어 84년 두 차례나 반쪽대회를 만든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한마디로 힘의 우위를 과시하려는 초강대국이 저질러놓은 일이다. 따지고 보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한 미국의 모스크바대회 보이코트운동부터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 소련은 이제 그 보복을 한 셈이고 미국은 그들이 던진 부머랭에 얻어맞은 격이 되었다.
사후 약방문처럼 미소는 앞으로는 이런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올림픽 존속을 위해 상호 협력할 것을 약속하는 문서화작업을 서두르고있다.
「돈·밀러」 미국 올림픽위원회 사무국장은 오늘과 같은 양극화가 올림픽 본래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면서 개최지 선정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했지만 미국으로서는 어떤 내용이라도 설득력이 없다.
올림픽 운동에는 무엇보다 순수성과 신념이 필요하다.
고 「에이버리·브런디지」 IOC 위원장처럼 흔들릴 줄 모르는 확신, 그리고 강력한 추진력이 아쉽다.
때로는 타협을 모르는 옹고집이 마찰을 일으킬지라도 그런 소신 없이는 오늘과 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어렵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우도 서울올림픽에 대한 확고한 신념, 일사불란한 의지와 전력투구의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성공은 기대할 수 없다. 비동맹국과의 스포츠 외교, 우리의 실력배양은 그 다음의 문제다.

<이태영>

<부국장 대우겸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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