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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승인·군경원확보 등 다목적 여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괴주석 김일성이 수상 강성산, 부주석 이종옥 인민무력부장 오진우 등을 거느리고 23일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한다.
김의 소련방문은 61년 7월 공식방문이래 23년, 67년 1월의 비공식방문을 넣더라도 17년만 의 어려운 걸음이다.
김일성은 26일까지 소련방문을 끝내고 27일부터 29일까지는 폴란드, 29일부터 6월 2일까지는 동독을 방문하고 이어 체코·불가리아·루마니아·유고 등 동구국가를 1개월에 걸쳐 순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72세의 고령인 그가 이처럼 장기여행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동경의 외교전문가들은 랭군암살테러사건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외교적 고립의 탈피와 김정일 후계체제의 승인, 경제·군사원조의 확보, 중공의 한·미·일 관계개선에 대한 견제 등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최근 중공을 중심으로 한 극동정세의 활발한 움직임 속에서 북한의 가장 큰 관심은 중공이 랭군사건에서 북한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 스포츠교류 등 한국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북한의 심정을 달래기 위해 5월초 호요방 중공당 총서기가 북한을 방문했으나 북한의 반발을 무마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동경 외교가에는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호요방을 대대적으로 환영한 것은 소련방문을 앞두고 방소용으로 중공카드를 내놓기 위한 것이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중공과 소련을 양쪽에 놓고 줄타기 외교를 해온 북한은 이번에도 중공에 대해서는 소련카드를, 소련에 대해서는 중공카드를 내놓고 외교적 교섭·후계문제·경제군사원조 등 현안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는 어려운 도박을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김일성을 맞아들이는 소련의 입장에서 볼 때 김일성의 이번 방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정일 후계체제 문제가 대두된 이래 소련은 북한을 차갑게 대해 왔다. 김일성의 소련방문이 그동안 이루어지지 못한 것도 소련과의 관계가 냉각되어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한·미·일 3국의 군사동맹의 형성·강화 움직임이 현저해진데다 미-중공, 일-중공 수뇌의 빈번한 교환방문이 상징하듯 중공의 대서방 접근이 두드러지고 있다.
중공의 대서방 접근은 소련에 대해 미국의 대소 포위망의 강화라는 점에서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다. 등소평이 「레이건」 미 대통령과 만났을 때 『억지력으로서의 미국의 군사력증강』을 용인하는 발언을 한데 대해 소련이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정세아래 북한의 존재는 소련의 대중공정책상 새로운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소련이 베트남을 포함하는 대중공 포위망에 북한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소련의 당 간부가 김정일에게 연하장을 보내는 등 후계체제를 인정한 듯한 움직임을 보이느 것도 이같은 대북한 접근정책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일성의 「17년만의 소련방문 자체가 소-북한관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할 수 있다.
김일성의 방소가 극동정세에 하나의 변수로 등장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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