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율 <본사논설주간>|가톨릭식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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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로마교고의 방한은 여의도광장의 쓰레기 줍는 일까지 화제로 남겼다. 어쨌든 그것은 완미에 가까운 행사였다는 점에서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번 한국 가톨릭 교회가 전대미문의 대행사를 치르며 보여준 저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환성과 열광의 규모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2백만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소행사들이 어쩌면 그리 자(척)로 잰 듯 조직적이고 세련되고 능숙할 수 있었을까. 「신앙인들의 행사」라는 설명만으로는 그런 의문을 다 풀 수 없다.
교회「운영」의 노하우라는 시각에서 그것은 충분한 흥미와 관심의 대상이 된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인간의 집단」 이다. 「요한」 23세 교황 (1958∼63년 재위) 도 『휴먼 소사이어티』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은 교회도 경영과 운영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새삼 이런 것을 화제로 삼는데도 이유가 있다. 우리는 많은 종교단체들이 다만 「종교단체」라는 소극적인 테두리에서 스스로 손발이 묶이거나, 아니면 그런 미명 속에서 오히려 비종교적인 형태로 변질되거나하는 양극현상을 많이 보아왔다. 사실 어느 쪽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더구나 종교단체의 「경영」 부재로 빚어지는 사회적 폐해와 분난과 잡음을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조직체」로서의 비중이 결코 가볍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장하게된다.
물론 종교단체를 섣불리 주식회사 따위에 비유할 수는 없다. 가톨릭은 교회를 「초자연적 집단」(슈퍼내처럴 소사이어티) ,「그리스도의 신비체」, 「하느님 백성」 과 같은 말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종지부를 찍지 않고 「눈에 보이는 집단」 이라는 꼬리를 잊지 않고 달아놓았다.
가톨릭의 교회경영이 얼마나 철저한가는 몇 년 전 미국예수회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적자경영에 고심한 나머지 외부의 경영 컨설턴트단체에 경영진단올 맡겼었다. 회사가 경영진단 받는 경우와 조금도 다름없다. 이런 사실이 미국의 경영전문잡지인 포천지에 소개된 것도 흥미 있다.
가톨릭식 경영의 제1조는 하이어라키(위계) 다. 위계에 따른 절대권위가 존중된다. 이것은 일종의 책임 경영제와 같다.
소수정예주의의 사제집단은 조직력의 핵심이다. 사제는 세인의 눈엔 가혹할 정도의 교육과정을 밟는다. 학과만의 과정이 아닌 개인교수방식에 의한 수련을 거쳐야한다. 일정한 외적조건만 갖추면 절로 자격증을 주는 식이 아니다 .사제로 서품되고 나서도 피정(피정)을 통해 그런 전인적 교육은 계속된다.
위계질서와 통일성 위의 조직력은 강할 수밖에 없다.
가톨릭식 경영의 또 다른 장점은 정보의 축적이다. 교황「요한·바오로」 2세는 방한에 앞서 시시콜콜이 한국의 모든 것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그 보고서는 우리사회의 각계전문분야의 전문인들에 의해 기초되고 선별되었다.
그것은 이번 교황의 방한 중 모든 메시지와 스피치에서 유감없이 구사되었다. 그는 특정종교의 지도자이면서도 그 종교의 영역을 벗어난 사람들까지도 만족시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는 상대가 「한국인」 이라는 배려를 세심하게 하고있었다.
정보의 축적은 행사준비에서도 완벽하게 발휘되었다. 교황의 외국방문 행사가 보고서와 VTR와 현지시찰로 자료화되고 분석되었다. 그 어떤 행사보다도 한국에서의 행사가 우월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주도면밀한 정보의 축적과 분석에서 가능했다.
「돈의 관리」는 어느 조직에서나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교황방한행사의 총비용은 32억원이었다. 이것은 사전에 각 실무분야별로 계상되고 충분한 예산심의과정을 거쳐 작성되었다. 이런 과정에 경제관료출신의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것도 인상적이다.
자금염출도 역시 빈틈없이 어루어졌다. 외부의 특혜 없이 독자적으로 자금을 각출할 수 있었던 것도 교환방한행사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었다.
행사준비에는 5개의 커미티가 구성되었다. 1백 여명의 각계 전문인이 참여한 자문기관이다. 이들은 수없이 거듭된 회의를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또 그것이 채택되었다. 권위주의적 엄격과 민주적 유연성의 절묘한 조화였다. 1년 여 동안의 착실한 준비는 그런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사무의 집행에 컴퓨터가 동원된 것도 특기할만하다. 초청장발부에 차질이 없었던 것도 그런 사무자동화의 성과였다.
지금 필자는 「가톨릭 식 경영 예찬사를 보내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과 같은 다양한 시대엔 종교도 경영되어야 완미한 조직체로서 제구실을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진리는 하느님이, 그 진리를 담는 그릇은 사람이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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