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텐징 노르게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반세기 전인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30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해발 8천8백50m) 정상에 두 인간의 발길이 닿았다. 두 사람 중 에드먼드 힐러리(83)경(卿)은 널리 알려졌지만 함께 오른 셰르파(Sherpa) 텐징 노르게이(당시 39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셰르파는 네팔과 북인도 지역에 사는 고산족(高山族). 히말라야 고봉을 등반하는 산악인들의 짐을 지고 동행하는 고산 등반 전문 도우미의 통칭으로 쓰인다.

정상에 오른 힐러리경이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 정상에서 내려다본 사방을 촬영하기에 바쁜 사이, 노르게이는 '황금 송아지'를 찾았다. 힐러리경이 다음날 열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 바칠 최고의 선물 마련에 분주했다면, 노르게이는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일확천금의 전설을 확인코자 했던 것이다.

귀국 후 여왕에게서 '경(Sir)'이란 귀족 칭호를 받은 힐러리에게 에베레스트가 명예였다면, 노르게이에게 에베레스트는 부(富)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야크 몰이꾼의 아들로 태어난 노르게이는 라마교 승려가 되고 싶어 했었다. 어려서 예비 수도승으로 출가해 교육을 받던 중 스승의 모진 매를 견디다 못해 사원을 뛰쳐나왔다.

가난에 사무친 그는 가장 빨리,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아 셰르파가 됐다. 그는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으로 영웅이 됐고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셰르파 생활의 고통에 못 배운 한(恨)까지 겹쳐 여섯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내면서 "너희들을 저 산에 보내지 않으려고 내가 산에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에베레스트 등반의 꿈을 버리지 못하자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선다고 세상을 다 보지는 못한단다. 정상에 오르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알 뿐이지"라는 말을 남기고 86년 숨졌다.

노르게이의 아들만이 아니라 셰르파 후배들이 에베레스트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에베레스트 정복 50주년을 맞아 등반을 시도한 여럿 가운데 셰르파 라크파 겔라(36)는 최단 기록(베이스캠프에서 10시간15분)을 세웠고, 아파는 열세 번 정상 정복이란 최다 기록 수립에 성공했다, 15세 소녀 밍은 최연소 기록을 경신했다. 힐러리경의 그늘에 가렸던 노르게이가 지하에서 웃겠다.

오병상 런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