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100일] "유품만으로 장례 치르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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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지팡이 만으로 장례를 치르다니….”

대구지하철 참사와 관련, 유일하게 인정사망 판정을 받은 김대규(56)씨의 조카 세훈(35·대구시 동구 검사동)씨.

세훈씨는 26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삼촌의 유품인 불탄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을 넘겨받아 장례를 치렀다. 그는 “이제는 잊고 싶다. 뭐라 할말이 없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장례에 대해서는 끝내 말문을 열지 않았다.

삼촌이 대구지하철 참사의 인정사망자로 판정받은 것은 어릴 때 다쳐 불편했던 오른쪽 다리를 지탱해준 지팡이 덕분.

손재주가 좋아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목수 일을 한 삼촌이 직접 손으로 깎아 만든 지팡이의 손잡이가 1080호 전동차의 6호 객차에서 발견된 것. 안경집도 발견됐지만 꼭 삼촌 것이라 입증하긴 곤란했다.

세훈씨는 국과수가 수습한 유류품 중에서 지금도 집에 보관돼 있는 지팡이와 같은 지팡이를 발견, 이를 인정사망위에 제출해 지난달 16일 사망자 판정을 받았다.

김씨의 시신은 많이 훼손돼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한 것으로 처리돼 보관중인 3구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훈씨는 사고 전날 삼촌에게 ‘불효’한 것 같아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직장에서 운전을 해 겨우 먹고 사는데 삼촌이 빈둥빈둥 놀기만 해 ‘쓴소리’를 하자 삼촌이 다음날 일거리를 찾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월배의 목수반장을 만나러 간 게 영원한 이별이 될 줄 몰랐던 것이다.

삼촌은 형(세훈씨의 부친)이 2001년 산업재해로 숨지자 세훈씨에게 얹혀 살았고 몸이 불편해 목수 일을 하기 어려웠다. 결혼하지 않은 삼촌은 혈육도 없었다.

삼촌이 사고를 당한 것을 확신한 세훈씨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중앙로역 현장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다른 실종자 가족과 함께 시신 찾기를 고대해 왔다

그는 “앞으로도 삼촌의 시신을 찾아 좋은 곳에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황선윤 기자

*** 바로잡습니다

5월 28일자 10면 '대구지하철 100일' 기사 중 사진은 김대규씨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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