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웍의 정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안타까운 게임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얻은 것도 있는 귀중한 순간이었다.
24일 한밤의 열기는 한반도의 대기와 싱가포르의 하늘을 넉넉히 녹일 것 같았다.
올림픽 축구 최종 예선전에서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5대4로 아깝게 패했지만 더 소중한 민족의 단합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선수들은 있는 기량을 모두 기울여 최선을 다했다.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전종선의 통렬한 중거리슛이 사우디아라비아네트에 꽂힌 것은 환상적인 장면이었다. 40m의 거리를 대포알 같이 무섭게 날아간 공이 키퍼를 나뒹굴게 하며 득점될 때 국민이 일제히 터뜨린 환호-.
그것이 바로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너와 나를 잊고 나라의 대표들에게 오직 이기기를 기원하며 마음으로 성원을 보내는 그 때의 순간이다.
전반 18분쯤 최순호의 멋진 연락을 받은 정해원이 적진에 뛰어들며 여유있게 추가골을 터뜨릴 때 다시 폭발한 민족의 환호-.
격전끝에 게임은 역전패로 끝났지만 싱가포르 국립경기장엔 귀중한 한국인의 마음이 여울져 흐르고 있었다.
파인 플레이의 정신-.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돌진하는 선수들의 정신이다. 체력에서 밀리기는 했지만 이겨야 한다는 신념에 몸을 불사르는 투지가 역연했다.
팀웍의 정신-. 골 게터 최순호는 이날따라 한번도 자기가 골을 넣으려 하지않고 동료에게 패스해서 팀의 승리를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었다.
일사불난한 2천명의 응원단도 인상적이었다. 5색꽃술을 가지고 질서있게 조직적으로 응원한 우리 근로자들의 뜨거운 조국애가 눈물겹다. 그중엔 멀리 말레이지아에서 2시간을 달려온 근로자도 있었다.
우리팀의 패배를 보고 그들은 허탈에 빠졌지만, 그 한마당에 모인 한국인들을 보고 무언가 뿌듯한 느낌이 있었으리라. 똑같이 고초를 겪으며 잘 살아보자고 먼 이국에 와서 몸부림치는 동족의 아픔의 교감.
경기장에 걸린 우리의 기업광고들도 인상적이다. 순전히 한글로 쓴 상품광고 조차 있었다.
우리가 어느새 타국에까지 나와 기업 광고를 할만큼 성장했는가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TV로 중계될 것을 예상한 광고전략이지만 역시 귀한 것이다.
아직 LA티킷의 희망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최선을 다한 싸움이 앞길을 밝혀줄 것이 분명하다.
이날 확인된 국민의 화합된 마음이 능히 그걸 보장할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