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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반둥회의 이후 60년, 고난의 제3 세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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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호 29면

반둥회의가 어제(18일)로 60주년을 맞았다. 비동맹·제3세계의 개념을 정립한 역사적 국제회의다. 1955년 4월18~24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 대표가 모여 냉전에서 중립을 선언하고, 상호 협력을 모색하며, 신식민주의의 종식을 촉구했다. 인도네시아는 이달 22~23일 자카르타에서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24일 반둥에서 기념행사를 연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왕국, 버마, 캄보디아왕국, 실론, 중화인민공화국, 키프로스(옵서버), 이집트 공화국, 에티오피아 제국, 골드코스트(가나의 옛 이름),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왕국, 일본, 요르단, 라오스, 레바논, 라이베리아, 리비아, 네팔, 파키스탄, 필리핀, 사우디 아라비아, 시리아 공화국, 수단, 태국, 터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 베트남(남베트남), 예멘 무타와킬 왕국이 참가했다.

이 나라들의 이후 운명을 살펴보면 지난 60년간 제3세계가 얼마나 고난의 길을 걸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군사쿠데타는 일상이었다. 왕국의 상당수가 이 때문에 사라졌다. 아프가니스탄은 73년 국왕 사촌이 주도한 쿠데타로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이후 소련 침공, 내전, 탈레반 통치, 미국 침공 등 산전수전을 다 겪은 뒤 현재 미국이 세운 불안한 정권이 지속하고 있다.

이라크는 58년 군부쿠데타로 공화국이 됐다. 영국이 옹립한 하심 왕가의 마지막 군주인 파이잘 2세는 가족과 함께 처형됐다. 2003년 미국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안정의 길은 멀기만 하다. 리비아는 69년 군사쿠데타로 51년 독립하면서 즉위한 초대 국왕인 이드리스를 내쫓고 공화국이 됐다. 2011년 민중혁명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졌으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 혁명도 벌어졌다. 이란은 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중심이 된 이슬람 혁명으로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국왕이 쫓겨나고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가 주도하는 신정체제로 바뀌었다.

왕국이 공산국가가 되기도 했다. 캄보디아는 70년 군부쿠데타로 우파 군사정권이 들어섰다가 75년 공산화되면서 ‘킬링필드’의 비극이 벌어졌다. 에티오피아 제국은 1974년 공산주의자들의 군부쿠데타로 황제가 폐위되고 공산국가가 됐다가 최근에서야 정상을 되찾고 있다.

내란도 잦다. 레바논은 91~95년 내전을 겪었으며, 시리아는 2011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22만 명 이상이 숨졌다. 450만(유엔)에서 510만(시리아 인권관측소)이 집을 잃었으며 342만 명이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21세기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꼽힌다.

비동맹 지도자인 브로즈 티토가 이끈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은 91년 이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코소보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선 91~95년 심각한 내전이 벌어져 10만여 명이 숨졌으며 끔찍한 인종학살도 발생했다. 제3세계의 고난은 제국주의와 냉전의 희생인가, 자체 모순의 결과인가.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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