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찔린 「용감한 시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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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강도범을 좇다 강도의 칼에 찔린 「용감한 시민」이 시골부모의 논밭을 팔아 치료비를 대고 직장도 잃은채 두달째 외로운 투병을 하고 있다는 l7일자 중앙일보 보도(11면)는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무엇보다 그 주인공을 통해 확인된 「살아있는 시민정신」이 눈물이 나도록 대견스러운 것은 기사를 대한 대다수 시민들의 느낌일 듯 싶다. 『강도야!』소리엔 외면하고 『불이야!』외쳐야 집밖에 뛰쳐나오는 오늘 우리사회의 메마름을 한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메마름을 적실 이웃사랑의 용기있는 실천을 기피하는 많은 소시민들에게 그것은 자극이며 권면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염치없는 위안이었다.
메마른 도회의 밑바닥에 아직 그래도 의용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참으로 고맙고 마음든든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용감한 시민」에게 돌아간 보상이 1백여만원의 치료비부담과 직장까지 그만둔 두달째 병석의 투병뿐이라는 데서는 고맙고 대견한 만큼이나 부끄럽고 참담한 느낌이다.
물론 이 젊은 시민이 어떤 물질적 보상을 바라 그런 행동을 한것은 아니다. 또 그런 의용의 실천은 물질적 보상의 약속으로 이루어질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의용의 실천이 개인적 희생으로만 끝나지 않게하는 사회의 책임, 그것이 문제다.
적어도 문명사회에서 그같은 사회의 책임은 제도화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의사상자(의사상자)구호법이 제정돼 있다. 그러나 그 집행은 워낙 미약해 일반시민들은 그런 법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또 이번의 경우처럼 당연히 대상이 되어야할 사람이 빠지는등 집행에 성의가 보이지 않는 예가 많다.
이래가지고서야 우리가 어찌 선진문명사회의 시민일수가 있을까.
해방 후 우리나라는 당연히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할 항일독립투사들을 내버리고 친일기술관료 따위에 나라운영을 맡김으로써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도덕적 타락을 자초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용감한 시민의 희생을 방치하는 것은 비중은 다를지라도 문제의 성격에서는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사회의 도덕적 무감각은 끊임 없는 깨우침으로 고쳐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사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근래 문제가 된 강력범죄의 해소도 이런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의인을 외롭지 않게하는 제도의 정비와 성의있는 집행이 필요한 때다. <문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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