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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내 몸은 곧 우리의 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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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성인성 질환을 공부하면서 왜곡되고 비뚤어진 관계에 대한 회복과 인간 몸의 가치를 도구화하거나 수단화하는 행동에 대한 개선 또는 잘못된 시선의 회복이 없는 한 지구상에는 무고한 피해자들이 계속 늘어날 것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러한 피해는 당사자인 본인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포함한다는 것을. 마치 성이라는 게 육체적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잘못된 성의 결과는 육체.심리.사회.영적으로 원치 않은 고통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몇 주 전 태국 파타야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리용의 에이즈센터에 갔을 때 만난 그곳의 종사자 12명은 모두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보균자였고 원인은 성관계였다. 여성 대부분은 남편에게서 전염됐고 그 센터에 머무르는 아이들은 모두 수직 감염됐다. 그들은 무슨 잘못으로 이 사회가 천형처럼 무서워하는 에이즈 원인균에 감염된 것일까?

그날 밤 무거운 마음으로 파타야 바닷가를 거닐면서 성의 상품화로 출렁거리는 물결을 만났다. 바닷가의 수많은 여인 가운데 십대처럼 보이는 어린 아가씨들이 이국에서 온 것 같은 서양인의 팔에 매달리며 데이트하는 것을 봤다. 바닷가를 달리며 줄지어 서 있는 카페와 술집은 대낮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열기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 도시는 알고 있을까? 지구 저편의 얼마나 많은 가정에서 아버지와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지, 또 얼마나 많은 그 땅의 소녀와 여성들이 몇 푼의 돈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잃어가고 있는지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렇다면 우선 자신의 몸 안에 나 자신이면서 나 자신을 넘어서는 거룩한 실존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폭력도 침투할 수 없도록 퇴치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성교육은 인간과 인간,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원래의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는 그것들을 회복시키는 도구가 돼야겠다. 성이란 것이 사랑과 생명을 이분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사진작가가 아프리카에서 찍어 온 사진 중에는 아주 인상 깊은 한 아이의 얼굴이 있다. 그 아이는 부모에게서 에이즈의 원인인 HIV가 수직 감염됐다.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으면서 웃어 보라고 여러 번 부탁했지만 그 아이의 두 눈 밑은 눈물이 이슬처럼 가득 맺혀 있었다. 그 아이가 사회를 보는 시선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 걸까?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웃음을 이 아이는 언제 잊어버렸는지, 지금의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만 맺혀 있는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은 또 무엇인지, 우리의 무분별하고 쾌락적인 성행위가 지구 저편의 무고한 어린이들의 웃음을 앗아가는 행위는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들의 인간관계 안에는 늘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있다. 그 이웃은 지구촌의 모든 인류를 포함한다.

배마리진 수녀 착한목자수녀회 소속 한국틴스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