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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세밑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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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돌이켜 보면 참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다. 오랜 경기 침체에도 을유년(乙酉年) 새해는 희망 속에 시작됐었다. 올해는 경기가 좀 살아나고, 나라도 좀 평안해지며, 살림살이도 좀 윤택해질 것이란 소박한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경기는 끝내 살아나지 않았고, 나라는 일 년 내내 소란스러웠으며, 살림살이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연초에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겠다던 대통령의 다짐은 '연정(聯政)' 논란 속에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경기가 곧 회복될 것이란 정부의 희망 섞인 예측은 봄에서 여름으로, 하반기에서 내년으로 늦춰졌다. 보궐선거와 과거사 정리, 행정수도 이전과 북핵 위기, 사법 개혁과 사학법 개정, 쌀협상 비준과 노동법 개정 등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으로 나라는 한시도 평온한 적이 없었다. 이 판에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온전할 리 없다. 성장률은 높아졌다는데 손에 쥔 소득은 1년 전이나 매한가지다. 가뜩이나 쪼그라든 호주머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는데 세금과 각종 부담금은 자꾸 늘어나기만 했다. 청년실업은 여전하고 나이 든 취업자들은 언제 떨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좌불안석이다. 연초에 가졌던 희망과 기대와 안정은 절망과 좌절과 불안으로 남았다. "현재 우리나라가 1988년 이후 가장 안정된 시기"라는 국무총리나 "선진국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으니 이미 선진국"이라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은 뜬금없이 들린다.

세밑의 여유로움을 기대하기는 애당초 글렀다. 올해 연말보너스를 주겠다는 기업이 절반에 못 미치고, 그나마 현금이 아닌 물건으로 주겠다는 회사가 태반이다. 예년에 흥청망청하던 송년회도 올해는 간소하게 줄었고, 그나마 부르는 곳이 뜸해졌다. 이렇게 을유년의 한 해가 쓸쓸히 가고 있다.

자, 올해는 그렇다 치고 다가오는 2006년 병술년(丙戌年) 새해는 어쩔 것인가. 정부와 한국은행은 내년엔 연간 5% 성장이 무난하리라고 장담한다. 경기 회복의 서광이 드디어 내년에는 확실히 눈에 들어오리라는 예측이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그런 예측이 맞았으면 좋겠다. 내년에 잠재성장률 수준인 5%를 달성한다 해도 그동안 까먹은 성장률을 생각하면 성에 차지 않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동안 속절없이 빗나간 경기 예측에 대한 누적된 불신도 제발 그 예측이 맞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누르지 못한다. 그리고 또 소망한다. 내년에는 경기가 확 살아나고, 나라도 평안해지며, 우리네 살림살이도 윤택해질 것을.

"낡은 것으로부터의 결별이 새로움의 한 조건이라고 보면, 칼날 같은 추위가 낡은 것들을 가차 없이 잘라 버리는 겨울의 한복판에 정월 초하루가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을 알겠습니다.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 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신영복)

연말이 썰렁하다고, 한 해가 무심하게 또 저문다고 너무 우울해 하지 말자. 날씨가 추워도 어깨를 좀 펴자. 올해 쌓였던 낡은 찌꺼기들을 훌훌 던져 버리고 새로운 한 해를 맞자. 살기가 버겁다고 희망마저 접는 것은 너무 썰렁하고 초라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