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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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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08년 칸딘스키는 작품이 안 풀려 붓을 내던지고 산책을 나갔다. 맑은 정신으로 다시 작업실에 들어서는데 기막힌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형태는 잘 모르겠지만 순수한 색채만으로 구성된 황홀한 수채화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실수로 옆으로 돌려놓은 자신의 작품이 아닌가. 추상화의 세계는 그렇게 탄생했다. <손철주 '인생이 그림 같다'에서>

'인간에게도 페로몬이 있느냐'는 해묵은 궁금증이었다. 95년 베른 대학의 웨더킨트 박사는 여성들에게 땀에 전 남자 면 티셔츠의 냄새를 맡게 했다. 그 결과 자신과 유전자형이 전혀 다른 남자의 땀 냄새를 좋아했다. 아버지나 오빠 같은 냄새는 모두 싫어했다. 유전적으로 강한 후손을 얻기 위해 서로 다른 유전자를 찾는 페로몬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과학이나 예술 같은 창조적 분야의 위대한 업적은 곧잘 엉뚱한 데서 시작된다. 단순한 실수에서 추상화가 나오고 때 묻은 티셔츠 냄새에서 페로몬이 입증된다. 이런 분야일수록 세기적인 발견이 편견에 시달리거나 냉대받기 일쑤다. 진리로 우뚝 설 때까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호이겐스는 1678년 빛의 파동설을 처음 내놓았다. 그러나 당시 압도적인 명성을 누렸던 뉴턴의 "빛은 입자"라는 가설에 짓눌렸다. 뉴턴에게 덤비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는 침묵했다. 프랑스의 프레넬이 실험을 통해 빛의 파동설을 입증하기까지 호이겐스는 100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아인슈타인도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뒤 3년이나 수모를 겪었다. 1차 세계대전 발발로 그의 논문은 영국에 건너오지도 못했다. 영국 천문학계 권위자인 다이슨이 그 논문에 관심을 보인 것이 행운이었다. 다이슨은 1919년 개기일식 때 대규모 관측대를 보냈지만 결과는 모호하게 나왔다. 그래도 다이슨은 과감히 아인슈타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곧바로 타임스지가 '과학의 혁명, 뉴턴이 무너졌다'는 기사를 내보면서 아인슈타인은 영웅이 됐다.

최근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가 논란에 휘말렸다. 섣불리 검증을 시도한 MBC는 역풍을 맞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경험이나 실험에서 검증된 사실도 나중에 손바닥처럼 뒤집히는 게 과학의 세계다. 현재의 기술로 최선을 다해 검증한 뒤 반증이 나오지 않으면 진리로 대접받을 뿐이다. 그래서 전문가의 영역이다. 여유를 갖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호이겐스는 무덤 속에서 137년이나 기다렸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