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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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난히 길고 지루했던 겨울도 이젠 계절의 변화엔 어쩔수 없이 봄기운에 밀려 멀어져 가고 있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른함을 느끼며 있는데,『냉이 캐러 갑시다』면서 옆에사는 새댁이 들어선다.
새댁은 결혼한지 여러해 되지만 아직 아이가 없어 언제나 새댁으로 불린다.
『아니, 지금 뭐라고 했수?』의아해서재차 물었다.
새댁은 『정말 세월가는줄 모르시네 저 앞에 사는 할머니께서 냉이를 한바구니 캐가지고 우물에서 씻으시더라고요』하는 것이다.
『아니, 어느새 땅이나 녹아야 냉이니 달래니캐지 너무한것아니야?』하면서도 얼마전 시장에 가서 비싼 냉이를 사다 된장찌개를 해먹은기억이 난다.
새댁과 같은 해에 지금사는 곳으로 이사온 우리는 취향도 좀 비슷했다.
조금은 억척스런 것이라고나 할까 지난 여름 새댁은 조그마한 마당 귀퉁이에다 상치·쑥갓·호박등 여러가지 채소를 화초가꾸듯 정성들여 키웠고, 나는 고추·가지·부추를 조금씩 키워서 이웃들과 나누어 먹곤 했다.
무공해 식품으로서도 좋았지만 직접 가꿔서 먹는 재미는 정말 일품이었다
시장에 가서 얼마든지 돈만 주면살수 있는 것이지만, 가계부 지출도 줄이고 손수 캐서 만들어 먹는 재미 또한 큰것이었다.
지난겨울 처럼 올해도 동장군의 기세에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새댁과 나는 제철을 만난듯 냉이를 한바구니 캐다가 멸치국물에 된장을 곱게 풀어 살뜨물을 붓고 냉이국을 구수하게 끓여 놓았다.
큼직한 양재기에다 받쳐들고『야, 정말 일미구나』하면서 맛있게 들어줄 남편이 눈에 선하다.
아직 귀가시간이 남아 있건만 오늘따라 더욱 기다려진다. <경기도남양주군구리읍교문2리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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