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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말문연 재독음악가 윤이상씨 베를린=김동수특파원|〃언제 다시 가볼지…마음은 항상 고국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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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독베를린에 살고있는 세계적인 한국출신 작곡가 윤이상씨가 처음으로 작곡한 교향곡1번이 오는5월 베를린필하머니 창단1백주년 기념공연서 초연된다.
윤이상씨는 동베를린사건(67년7월)으로 2년간 옥고를 치르며 오페라『나비의 꿈」을 작곡, 서독에서 공연되어 절찬을 받았으며 뮌헨올림믹개막 오페라 『심청』도 호평을 받아 유럽음악계에서 명성을 떨쳤다.
윤씨는 69년3월 형집행정지처분을받고 출감, 서독으로 돌아가 71년8월23일 서독에 귀화했다.
그후 82년 대한민국 음악제에서는 윤씨의 실내악곡 몇명이 연주되었다.
최초의 교향곡1번의 공연을 앞두고 본사 김동수 서독주재특파원이 윤씨를 찾아 그의 작품세계와 계획을 들었다.<편집자주>
오랫동안익 기다림이었다.
재작년 서울음악제에서 작품이 연주되는 것을 계기로 국내신문 독자들에게 『말문 좀열어달라』 는 1년반전부터의 요청에『때가 아니다』라고 고사해온 윤이상씨(66).
진눈깨비로 질척이는 2윌25일 저녁무렵 서베를린 남쪽끝 호수가 숲속에 자리잡은 그의집 대문이 기자에게 열렸다.
아직 활짝 열린것은 아니었다.
우선 자신의 근황에 대해 조금만 얘기하고 많은 사연은 뒤로 미루자는게 그의 희망이었다.

<고향소식은 늘 들어>
윤씨와의 대화는 그래서 주로 그의 작곡활동에만 한정될수밖에 없었다.
윤씨의 응접실엔 빛이 바랜 조선시대의 그림두폭, 강서고분의 고구려벽화등 6∼7점의 그림이 벽에 걸려있고 윤씨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장롱이 방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장작이 타고있는 벽난로등 모두 서구적인 방안분위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다지부조화스럽거나 낯설다는 생각도 들지않았다.
그의 음악을 말할때 흔히 들어지는 엇귀, 「동양사상을 바탕으로한 서양음악」 이 뜻하는바도 이런 방안분위기와 비슷한게 아닐까 나름대로 유추해봤다.,
고희를 3년남짓앞둔 노인답지 않게 검은 머리에 정정한 모습의 윤씨는 18개월전 처음 찾았을때 풍기던 엄한 표정을 거두고 기자를 맞았다.
-82년 서울에서 선생님작품이 15년만에 처음 연주됐을때의 감회랄까 당시의 심정부터 말씀해주시죠.
▲고국에서 내작품이 연주된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했지만 직접 가볼수없어 애석했읍니다.
고향을 멀리 등지고 살아왔지만 생각은 늘 그곳에 가있읍니다. 나는 그동안 영원히 고향에 가지못할 것이라는각오아래 살아왔어요. 고향을 찾아갈수 있는때가 오기를 바라고 있읍니다.
-고향소식은 어떻게 듣고 계십니까.
▲파리에있는 아는 사람이 국내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보내주어 받아보고 있읍니다.
-최근의 작품활동과 생활은 어떠하신지요.
▲요즘은 제2교향곡을 만들고 있습니다. 베를린 라디오 심퍼니 오키스트러의 위촉으로 쓰고있는데 금년 12월까지 끝낼 예정입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지금까지 오페라를 포함해 관현악곡등 80여곡쯤 되지요? 아직 교향곡은 없었던 것으로아는데요 .
▲지난해에 제1교향곡을 완성했어요. 베를린 필하머니창립1백주년 기념작품으로 의뢰받은 것인데 꼬박1년 걸렸읍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음악생활을 사상적·기술적·미학적으로 집대성하려고 만들었어요. 4관편성으로 연주시간은 45분정도입니다. 오는 5월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동안 베를린필이 연주하기로 계획이 짜여져있어요.
(베를린필은 창립 1백주년기념으로윤씨와 「레너드·번스타인」등 4명의 음악가들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1년에 쓰는 작품은 얼마나 되는지요.
▲평균 4∼5편씩 써왔지요. 일반작곡가들에 비해 다작이고 빨리 쓰는편이지요.작품을 위촉받으면 시간에 쫓기면서 진통을 겪기때무어 생활은 언제나 내적인 긴장속에 있읍니다.
-선생님의 음악에 대해서는 『현대적』 이란 말이 따라다니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관념에 젖은 사람들도 있는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속의 하나입니다만.
▲내음악은 불쑥 땅에서 솟아난것이 아닙니다. 동양과 서앙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감흥과 정신에서 우러난 것입니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음악도 의사와 감정소통을 위한 수단입니다.
인간의 감흥에는 동서양의 차이가없기때문에 감정소통면에서 음악은 말보다 더 쉬운 수단입니다. 어느민족의 음악이든간에 누구에게나 감흥을주고 즐길수있는 요소가 있읍니다.
작곡가는 개개인이 모두 나름대로의 특수한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자기가 지닌 사상적·기술적·미학적인 요소를 어떻게 지식대중에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합니다.내응악이 이해하기 힘들다면 어떻게 발을붙일수 있겠음니까.
-「지식대중」이란 표현을 방금 쓰셨는데.
▲광범한 대중보다는 음악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을 얘기한 것입니다. 내음악은 동양의 오래된 전통의 요소에 서양기술을 배합한 것입니다.
동양과 서양사람의 인간문제를 생각할때, 궁극은 같겠지만 출발점은 다릅니다. 아니, 어쩌면 궁극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요.
예술가는 이런 차이를 극복하고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야합니다.
발전이란 인간성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바로근본의 문제, 밑바탕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음악을 듣겠다는 뜻을 가진많은 사람들에게 내음악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활동외에 현재 베를린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지요.
▲사실은 2년전 정년으로 그만두어야하는데 학교쪽에서 더 있어달라고해서 계속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그민두게 됩니다.
-내년 이후에는 제자를 두지 않으시렵니까.
▲내년예 베를린 음악대학을 그만둔다는 것을 알고는 여러곳에서 교섭이 오고 있어요. 몰타나 불가리아같은 조그만 나라에서까지 요청이 왔습니다. 그러나 건강도 좋지않고 시간도 없어 아주 그만둘 생각입니다.
예전에 한국사람을 가르친적도 있읍니다만 음악과는 관계없는 일 때문에 뜻대로 되지않았습니다.
내년부터는아무도 지도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내년에 교수직물러나>
-건강이 좋지않다고 하셨는데
▲지병이 많고 시간에 쫓기기때문에 건강유지에 애를 쓰고있습니다. 아침이면 집에있는 실내풀에서 15∼20분씩 꼭 수영을 합니다. 정원산책도 하죠. 작품은 9시30분부터 하오1시까지 씁니다.
점심뒤에는 반드시 2∼3시간 잠을 자야지, 그렇지 않으면 몸이 배겨나지 못해요. 자고나선 4시에서 7시까지 다시 일을 합니다(그는 여러차례 얘기를 중단하곤했다.기관지가 좋지않다고 했다).
-가정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읍니까.
▲집사람과 둘이 살고 있습니다. 집사람 건강도 좋은 편이 아닙니다. 딸 정 (34) 과 아들 자경 (30) 은 독일서 공부를 끝내고 지금은 모두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손자들이 있는데 집에서 아무리 우리말을 시키려해도 듣지 않아 큰 일입니다.
-책을 손에 드실때는 어떤 것을 고르십니까.
▲시사적인 것이 아니고 고전적인것을 봅니다. 주로 동양익 고전이죠. 당시를 즐겨 읽습니다. 선친께서 한시를 많이 쓰셨는데 그런 추억탓인가봐요. 내 음악의 근본이 동양이고 우리 민족이 가진 예술적인 토양과도 관계가 깊기 때문이기도합니다.
-작품을 의뢰받아 쓰지않고 시간여유를 갖고 자유롭게 창작하게 된다면 어떤것을 만드시겠읍니까.
▲교육적인 독주곡을 많이 만들고싶어요. 어린이에서부터 높은 수준까지 체계적으로 익힐수있는 음악성높은 작픔을 썼으면 합니다. 큰 작품의 작곡의뢰를 받으면 물론 많은 돈이 들어오지만, 앞으로는 큰것은 거절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음악이외의 일도 많이 했지만 나이도 들고 건강도 좋지 않아 감당하기 힘들어 이제부터는 줄여갈 생각도 들어요.
-오랜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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