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혈세로 축재한 뻔뻔한 의원들, 국민 억장 무너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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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의 억장이 무너진다. 본지 특별취재팀의 취재 결과 국회의원들이 나라 예산으로 자신들의 땅 인근에 도로를 낸 뒤 지가상승으로 큰 이득을 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강길부(울산 울주) 의원이 280억원의 예산으로 확장한 지역구 내 도로 인근엔 그가 대대로 보유해온 땅 4509㎡(1366평)가 숨어 있었다. 도로 덕분에 땅값은 10년 사이 5200여만원에서 4억여원으로 8배나 뛰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전남 여수을) 의원도 지역구 지방도로 확장을 위해 예산 265억원을 따냈다. 이 도로 주변에도 역시 주 의원의 땅 3010㎡(912평)가 위치하고 있다. 이 땅도 값이 뛰고 있다고 한다. 새누리당 박대동(울산 북구) 의원과 홍문종(경기 의정부을) 의원이 조성한 도로와 입체교차로 인근에도 박 의원과 형제들의 땅, 홍 의원이 이사장인 학원이 버티고 있다.

강 의원은 지난달 신고한 재산이 34억4737만원으로 울산 지역 의원 6명 중 1위다.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인 주 의원도 재산이 지난해보다 4901만원 늘어난 45억2296만원으로 신고돼 당 지도부 가운데 최고 자산가로 기록됐다. 온 국민이 불황에 시달린 지난해 국회의원만은 재산이 증가한 이가 81.8%(239명)에 달했다. 1억원 이상 재산을 불린 의원이 134명, 5억원 이상 늘린 의원도 12명이나 됐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밝힌 의원들의 재산 증가 요인 1위는 부동산이었다. 의원 본인이나 배우자 명의의 토지나 건물 값이 뛰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탁월한 의원들의 부동산 재테크 비결 중 하나가 혹시라도 이번에 문제가 된 의원들이 쓴 수법이라면 경악할 일이다. 해당 의원들은 “재산 증식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지역구 사업 예산을 따내면서 자신의 땅값이 오르리란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처음부터 사익을 노리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국민의 혈세인 예산 심의 권한을 개인적인 축재에 활용했다는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이런 행태를 눈감으면 400조원 가까운 정부 예산을 의원들이 심의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사익을 챙길 수 있게 된다. 매년 정부 예산 심사에서 의원들이 민원을 넣는 ‘쪽지 예산’만 3조원이다. 지역구 발전에 필요한 사업이 대부분이겠지만 의원의 사적 이해가 연관됐을 가능성도 크다. 지역 유지들이 자신들의 맹지에도 도로를 내달라고 의원들에게 로비를 벌일 우려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의원들이 자신의 땅이 있는 곳에 예산을 요구할 경우 사전 신고를 의무화하고, 사후에 발생한 차익은 환수하게끔 법제화해야 한다. 또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김영란법)’에 빠진 이해충돌 방지규정을 되살려 의원이 사적 이익과 연관된 법안·예산은 다룰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해야 한다. 고위 공직자가 재산을 신고할 때 직계존비속의 재산도 반드시 공개토록 해 투명도를 높이는 것도 시급하다. 아들이 보유한 분당의 맹지 공시지가가 11년 사이 11배 넘게 폭등해 ‘한국의 베벌리힐스’를 개발했다는 비아냥을 듣는 이완구 국무총리 같은 사례가 더는 나오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