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리포트] 경제정책에 '공짜'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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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인과응보(因果應報).

세상은 결국 공평한지라, 공짜가 없다. 정치부터 그렇다. 대통령 후보로서 대미관계에 대해 호기있게 얘기할 때는 멋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 북핵.미군 재배치 같은 것 때문에 그 말을 주워 담을 수밖에 없게 됐다.

결국 처음의 멋있음은 '변절이다'라는 지지층의 비난으로 값을 치렀다. 대통령의 자랑 중 하나는 그가 근로자들의 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랑은 근로자의 기대를 한없이 부풀렸고 급기야 다른 집단들의 요구까지 부풀리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말로 그 기대에 선을 긋는 것으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무엇을 얻으면 꼭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따르고, 무리를 하면 더 비싼 값을 지불하게 된다. 시장이 있어서다.

정부의 노사분규 개입에도 시장은 작동한다. 사측을 다그쳐 임금을 올려주고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뺏지 않도록 할 때까지는 그럴듯하다. 정부가 좋은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가뜩이나 취약한 그 기업을 더욱 약화시키는 값을 내게 한다. 또 정부가 너무 자주 분규에 개입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라 전체의 임금과 물가인상, 그리고 노동시장의 경직화로 되받게 된다.

신용카드 '대란'도 사용자.회사.정부 모두의 지나침에서 생긴 일이다. 호기 있게 쓸 때가 좋았다. 카드사용을 부추기고, 그것이 소비를 주도하고, 나중에는 나라 경기를 끌어올릴 때는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지나침은 결국 신용불량의 확산이로 귀결됐다. 카드 사용자가 지불해야 할 당연한 대가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본격화된 신용카드 대책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신용불량자를 겨냥한 금리를 올리고 함부로 신용카드를 발급 못하게 할 때까지는 좋았다. 마땅히 정부가 해야할 일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너무 지나쳤다. 경기가 막 수그러들기 시작하는 시점에 신용카드업을 죄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의 사단이 벌어졌다. 신용불량을 줄이려고 올린 수수료와 한도 줄이기가 결국 더 많은 신용불량자를 낳고 신용카드 회사의 존폐가 걸릴 정도의 금융부실로 되돌아 온 것이다.

우리는 뭐든지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버릇이 있다. 인프레.금융불안.경제위기 등 지금 우리가 저지르는 극단의 끝이 뭔지 그토록 얘기해도 꼭 끝까지 가 보고 사단이 나야 "아, 그렇구나"하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김정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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