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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벗고 빛을 입다 … 한국 오는 프랑스 '19금 쇼' 두 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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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프랑스산(産) ‘19금 공연’ 두 편이 한국 무대에 오른다. 오는 21일부터 오픈런으로 서울 광장동 워커힐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아트누드쇼 ‘크레이지 호스’와 10·1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현대무용 ‘트레지디(Tragedie: 비극)’다. ‘크레이지 호스’는 거의 전라(全裸) 상태인 여성 무용수들의 몸에 빛과 영상을 입히고 감각적인 안무를 결합시킨 작품이다. ‘트레지디’에선 18명의 남녀 무용수가 공연 시간 90분 내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무대를 누빈다. 이들이 옷을 벗어던진 이유는 뭘까. 프랑스 파리 현지를 찾아가 ‘벗은 몸’의 미학을 들어봤다.

아트누드쇼 ‘크레이지 호스’의 한 장면. 여성 무용수의 나체가 움직이는 캔버스처럼 보인다. [사진 더블유앤펀엔터테인먼트, 성남아트센터]
분장실에서 대기 중인 ‘크레이지 호스’ 무용수들.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카바레(극장식 사교클럽) ‘크레이지 호스 파리’. 밤이 되자 관객들이 속속 빨간색 카펫이 깔린 극장 안으로 들어왔다. 반백의 노인과 커다란 가방을 든 관광객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250여 석 객석은 어느새 꽉 찼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아트누드쇼 ‘크레이지 호스’는 ‘물랑루즈’ ‘리도’와 함께 파리의 3대 쇼로 꼽히는 공연이다. 프랑스 전위예술가 알랭 베르나댕이 1951년 5월 카바레 문을 연 이후 65년째 매일 밤 같은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동안 전 세계 1500만 명이 관람했고, 칼 라거펠트·크리스티앙 루부탱·장 폴 고티에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협업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쇼가 시작되자 객석에선 탄성과 웃음이 오갔다. 무용수들은 가슴을 완전히 드러낸 ‘톱리스’ 상태로 무대에 등장했다. 발은 하이힐 부츠로 꽁꽁 싸맸지만 몸에 걸친 ‘옷’은 실오라기 수준이었다. 이들의 몸을 감싼 것은 강렬한 색깔 조명과 역동적인 영상이었다. 조명과 영상이 무용수들의 춤과 정교하게 맞물려 움직였다. 액자 프레임 모양의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 장면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처럼 보였다.

 노출의 수위는 높았지만 분위기는 경쾌했다. 이날 친구 세 명과 함께 쇼를 보러왔다는 나탈리 레비(45·주부)는 “‘크레이지 호스’를 본 건 이번이 두 번째”라며 “특별한 이벤트로 즐기기 좋은 구경거리”라고 말했다.

 ‘크레이지 호스 파리’의 안드레 다이센버그 대표는 “‘크레이지 호스’는 선정적인(sexual) 쇼가 아니라 관능적인(sensual) 쇼”라고 말했다. 노출에 대한 소신도 확고했다. “여성의 몸을 미학적인 도구로 활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여성의 나체는 원초적 아름다움의 근원”이라며 “여성의 몸을 캔버스로 생각하고 그 위에 빛과 조명을 덧입혀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쇼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예술감독인 알리 마다비 역시 “노출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며 “‘크레이지 호스’의 무용수는 그냥 벗고 춤추는 여자가 아니라 예술작품”이라고 말했다. ‘크레이지 호스’는 엄격한 신체기준에 따라 무용수를 뽑는다. ▶키 168~172㎝ ▶유두 사이 거리 21㎝ ▶배꼽에서 치골까지의 거리 13㎝ 등의 선발 기준을 51년 첫 공연부터 지켜오고 있다. 매년 2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뽑힌 무용수들은 3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뒤 무대에 오른다. 무용수 한 명이 1년 동안 사용하는 빨간색 립스틱은 300개, 스타킹은 2500켤레에 이른다.

한국 공연을 위한 무용수들은 지난 1월 선발해 현재 훈련 중이다. 안드레 다이센버그 대표는 “한국 관객들이 우리 공연을 보고 깜짝 놀라기를 기대한다”면서 “수줍어하는 대신 마음을 열고 즐기라”고 주문했다.

남녀 18명 적나라한 누드 현대무용 ‘트레지디’

프랑스 현대무용 ‘트레지디’는 18명의 무용수가 전라의 인간군상을 선보이며 원초적인 신체를 표현한다. [사진 더블유앤펀엔터테인먼트, 성남아트센터]
‘트레지디’의 안무가 올리비에 뒤부아.

‘트레지디’는 파격적인 작품이다. 22~51세 다양한 연령·인종·체형의 남녀 무용수 18명이 전라로 등장해 무대 위에서 걷고 뛰고 부딪히고 엉키고 쓰러진다. ‘트레지디’의 전라는 대담하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슬쩍 보여주는 여타 ‘누드’ 공연과는 다르다. 18명의 알몸이 처음부터 끝까지 환한 불빛 아래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2012년 초연한 ‘트레지디’는 그해 아비뇽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받았고, 이후 영국 런던, 이스라엘 텔아비브, 캐나다 몬트리올 등 전 세계 40여 개 도시를 돌며 세계 무용계의 화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안무가는 프랑스 국립안무센터 ‘발레 뒤 노르’의 예술감독인 올리비에 뒤부아(43)다. 작품 속 ‘벗은 몸’의 의미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전화와 e메일을 통해 들어봤다.

 - 왜 나체 공연인가.

 “‘트레지디’에서 나체는 생물학적·철학적·인류학적 표현 매체다. 음악에서의 악보와 같다. 그 자체로는 어떤 해방도, 자유도 담아내지 않는다. 벗은 몸은 세상과 인류를 탐구하는 실험실이다. 저마다의 육체가 세상의 수수께끼를 품고 있다. 나는 육체를 통해 세상을 읽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인간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 무용수 18명의 선발 기준은 무엇인가.

 “무용수를 뽑을 때 몸매는 고려 사항이 아니다. 특별히 선호하는 체형은 없으며, 그저 춤을 추는 남성·여성이면 족하다. 하지만 몸의 움직임을 통해 휴머니즘·호기심·저항·상실 등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과 기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독특한 개인사와 비전을 갖고 있는 무용수를 선호한다.”

 - 작품 이름이 ‘비극(트레지디)’인 까닭은.

 “독일 철학자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트레지디’에서 전라의 무용수들이 다양한 인간상을 표현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이유로 인간성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이 점이 바로 우리 인류의 비극이다. ‘트레지디’의 의도는 철학적이고 비물질적인 인간성을 본능적·육체적으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이는 벗은 몸을 통해 신체적 특징을 보여주는 데서 출발한다. ‘트레지디’는 퍼레이드·에피소드·카타르시스의 세 단계로 진행된다.”

 -‘트레지디’는 곧 내한공연을 한다. 아시아 초연이다. 한국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무용수·안무가로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번 한국 공연은 특별하다. 이 작품을 과감하게 선택해 관객들을 강렬하고도 내밀한 문제 속으로 빠뜨리려는 성남아트센터의 의지가 돋보인다. 관객들이 ‘트레지디’를 보며 자기 자신과 만나기를 바란다. 벗은 몸의 무용수들이 그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이다. 또 내가 내 자신을 채찍질하는 한마디를 공유하자면, 항상 호기심을 가져라. 남과 다른 것에 흥미를 갖고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파리=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크레이지 호스=여성 무용수의 벗은 몸에 빛과 영상·안무를 더해 원초적인 육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누드쇼다. 1951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카바레 ‘크레이지호스 파리’에서 공연되고 있다. 관객들은 샴페인을 마시며 쇼를 즐긴다. 티켓값은 85유로(약 10만원)부터 출발한다. 2001년부터 12년 동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상설공연을 하기도 했다.

◆트레지디=키 170㎝, 몸무게 80㎏의 작고 뚱뚱한 체형의 무용수 출신 안무가 올리비에 뒤부아가 2012년 첫선을 보인 현대무용 작품. 뒤부아는 ‘지상의 모든 금을 위하여’(2006년), ‘목신들의 오후’(2008년) 등 늘 파격적인 작품으로 무용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트레지디’에서 그는 18명의 전라를 통해 본연의 인간성으로의 회귀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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