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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허물고 정원 가꾼 대구 골목, 이웃 사랑 꽃 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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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차례로 담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작은 정원을 만든 대구시 대명동 주민들. 이들은 “담장을 허문 대신 진짜 이웃을 얻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이제 완연한 봄이지.” “그럼, 잔디가 파릇파릇하잖아.”

 29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동의 주택가. 음종균(63)씨가 마당 잔디밭에서 풀을 뽑다가 이웃인 권오석(64)씨가 다가오자 인사를 건넨다. 이들은 마당의 꽃나무들을 보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이곳은 여느 주택가와 좀 다른 모습이다. 골목을 따라 늘어선 1, 2층 단독주택 7가구 중 6가구에 담장이 없다. 대신 2단으로 조경석을 쌓고 영산홍 등 꽃나무를 심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감·대추·포도 같은 유실수도 보인다. 이 골목 주민들은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차례로 담장을 없애고 미니 정원을 조성했다. 음씨는 “높다란 담장이 갑갑해 먼저 헐고 이웃에게도 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젠 스스럼없이 어울려 음식을 해먹고 말도 놓고 지낼 정도로 친한 ‘이웃 사촌’이 됐다”며 웃었다.

 올해로 20년째를 맞은 대구의 담장 허물기 운동이 주민들의 삶을 바꿔놓고 있다. 눈 인사 정도만 하던 이웃이 가족처럼 어울려 정을 나누고 있어서다.

 담장 허물기 운동은 1995년 대구 지역 시민단체와 공공기관 등으로 구성된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의 제의에 따라 시작됐다. 담장과 함께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출발점이란 생각에서였다.

 대구 서구청이 96년 3월 처음으로 담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소공원을 만들었다. 98년 11월엔 당시 시민회의 위원이던 김경민(53) 대구YMCA 사무총장이 자신의 집 담을 철거하면서 민간으로 확대됐다. 이후 교회·아파트·병원 등도 동참했다.

 참여 주민들은 “살 맛 난다”고 입을 모은다. 담장이 없으니 갑갑하지 않고 마음을 나눌 이웃도 얻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외출할 땐 집을 봐 달라고 옆 집에 부탁하기도 한다. 3년 전 이웃 두 집과 함께 담장을 철거한 이미근(57·여)씨는 “꽃이 핀 정원에 탁자를 놓고 동네 사람이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곤 한다. 담장을 없앤 이후 하루 하루가 행복하다”고 했다.

 시민회의는 매년 담장 허물기 신청을 받아 50여 곳을 지원한다.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담장 허물기 조경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원 대상을 결정한다. 지금까지 29.6㎞의 담장이 사라졌다. 그 자리와 마당에는 조경석을 놓고 작은 꽃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꾸며진 정원은 35만9574㎡. 지원금으로 204억1700만원(민간 부담 42억8000만원)이 들었다. 임영숙 대구시 자치행정과장은 “이웃 간 마음의 문을 연 것이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이 운동은 고교 교과서에 실렸고, 이를 연구한 논문은 일본도시계획학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대구 담장 허물기 운동은 …

- 1995년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주도
-주택·관공서·병원 등 809개소 29.6㎞ 철거
-담장 허문 자리엔 정원 35만9574㎡ 조성
- 서울 등 전국 10여 개 지방자치단체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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