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땐 담배 하루 두 갑 골초 … 거실에 아내 유골함 보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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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앞줄 오른쪽·착석)의 가족사진. 부인 콰걱추(앞줄 왼쪽·착석)가 작고(2010년)하기 전 찍었다. 장남 리셴룽(뒷줄 가운데·검은 옷)은 총리, 그의 부인 호칭(왼쪽 넷째)은 193조원에 달하는 국부 펀드 테마섹 홀딩스의 최고경영자(CEO), 차남 리셴양(왼쪽 둘째)은 싱가포르 민간항공청 이사회 의장, 그의 부인 림쉣펀(맨 왼쪽)은 변호사, 리 전 총리의 딸 리웨이링(뒷줄 오른쪽에서 넷째)은 싱가포르 국립 뇌신경의학원 원장이다. [사진 싱가포르 총리실]

고(故)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는 원래 지독한 애연가였다. 1957년까지만 해도 그는 하루 담배 2갑을 피웠다. 담배 연기는 그의 목을 해쳤다. 급기야 선거기간 중 목소리가 안 나오기 시작했다. 지지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건네기 힘든 목 상태에 놀란 그는 담배를 끊었다. 60년대부터 리콴유의 사무실 내 흡연이 금지됐다. 그 뒤 싱가포르는 흡연에 엄격한 국가가 됐다.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를 잃은 싱가포르에서는 리 전 총리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일화를 추억하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24일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는 리콴유가 숨을 거두기 전 지난 몇 년간의 일상을 소개했다.

 리 전 총리의 아침은 신문과 함께였다. 영어·중국어·말레이어(語) 세 가지 언어로 된 신문들을 챙겨봤다. 잡지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타임을 구독했다. 그의 또 다른 일상 중 하나가 중국어 연마였다. 주중에 집무실로 중국어 과외 선생을 불러 두 시간씩 개인 레슨을 받았다. 시사 문제를 표준 중국어로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병원 신세를 질 때는 선생을 병실로 불렀다. 그는 2011년 싱가포르인들에게 “중국어를 배우지 않으면 조만간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어 학습을 강조했다. 영어·중국어 공용 학습을 선도했던 리 전 총리가 몸소 실천한 언어 교육의 일면이다.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 점심을 먹었다. 리콴유 일가의 오랜 전통이었다. 큰아들 리셴룽(李顯龍) 총리, 둘째 아들 리셴양(李顯陽)과 두 며느리, 일곱 손주까지 모여 북적였다. 떠들썩한 주말도 그의 외로움을 완전히 지울 순 없었다. 거실에 있는 아내의 유골 항아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게 그의 습관이었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24일 보도했다. 리 전 총리는 생전에 “죽거든 화장해 아내의 뼛가루와 합쳐 달라”고 당부했다.

 아내를 잃은 리 전 총리를 지근거리에서 도운 이는 형제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여동생 모니카 리(85)였다. 리 전 총리는 동생에게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준 요리들을 주문했다. 싱가포르 전통 샐러드 로작(Rojak), 국수의 일종인 미이샴(Mee siam), 꼬치요리 사테이, 인도네시아식 샐러드 가도가도(Gado gado)였다.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은 리콴유 서거를 기해 25일부터 다음달 26일까지 ‘리콴유 회고전’을 무료로 연다.

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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