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운명의 일주일 … 100대1 감자 막아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대주주 지분에 대해 100대1 감자(減資)를 해야겠습니다.”

 이달 중순 동부그룹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동부메탈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이 신규 자금지원 등의 전제 조건으로 차등 감자를 요구한 것이다. 채권단은 동부제철 자율협약 체결 때도 대주주 100대1, 일반 주주 4대1의 차등 감자를 했고 그 결과 김준기(사진) 동부 회장이 경영권을 잃었다.

 이번에는 충격파가 더 크다. 동부메탈과 동부팜한농 경영권 상실, 동부화재 지분율 하락, 김 회장 개인파산으로 연결되는 ‘동부 파국 시나리오’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사안은 동부인베스트먼트(DBI)·동부스탁인베스트(DSI)가 동부메탈·동부화재 주식을 담보로 재무적투자자(FI)들로부터 3100억원을 빌린 데서 시작한다. DBI·DSI의 소유주인 김 회장도 당시 연대보증을 했다. 현재 대출금 잔액은 1250억원. 문제는 당시 FI와 DBI 등이 “동부메탈 등의 디폴트(채무불이행)시 즉시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기한이익상실)”는 내용의 약정을 맺었다는 점이다.

 당초 약정상에는 워크아웃도 디폴트의 범주에 들어갔지만 동부측이 FI들에게 사정한 결과 겨우 양보를 받아냈다. FI들은 “한 번은 봐주지만 담보로 잡은 주식들이 한 주라도 감자되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명백한 디폴트 상황인 법정관리를 모면하고 워크아웃으로 가게 된 것도 동부 입장에서는 천운이었다.

 그런데 워크아웃 결정 후 불과 일주일만에 감자 통보가 왔다. 감자시 파국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은 높아진다. 동부메탈 경영권 상실 뿐 아니라 김 회장 일가가 제조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려했던 동부화재 지분의 상당 부분도 휴지조각이 된다. FI가 DBI·DSI에 “오늘 당장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면 DBI·DSI는 부도, 김 회장은 개인파산 위기에 직면한다. 1250억원을 당장 갚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동부팜한농의 경영권도 날아갈 수 있다. FI들이 동부팜한농에 지분 투자를 하면서 “DBI에 기한이익상실 사안이 발생하면 동부팜한농을 매각할 수 있다”는 약정 을 맺었기 때문이다.

 동부측은 하나은행에 “감자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읍소했고, 하나은행은 “200억원을 내놓으면 감자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새 제안을 했다. 일단 감자를 막을 길은 열렸지만 200억원을 마련하는 일도 쉽지 않다. 동부측은 “100억원은 현금으로, 나머지는 주식 등 현물로 하자”고 역제안을 한 상태다. 하나은행은 동부와 최종조율을 한 뒤 다른 채권기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에 나설 예정이다. 시간은 많지 않다. 4월1일 사채권자 집회 이전까지 모든 절차가 마무리돼야 한다. 동부메탈은 총 채권의 45%를 사채권자(비협약채권자)가 보유하고 있어 당일 사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워크아웃이 진행된다. 운명의 일주일인 셈이다.

 고비는 무수히 많다. 하나은행과 출연액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하고, 다른 채권기관들의 승인도 필요하다. 사채권자들의 동의도 필수 조건이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동부는 100대1 감자 또는 법정관리행을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 모든 폭탄을 무사히 피해나간다면 동부는 ▶800억원대 신규자금 지원, ▶2017년말까지 기존 차입금 상환유예, ▶대출금리 연 1~2%로 인하 등으로 생존의 희망을 이어나가게 된다.

박진석·심새롬기자 kaila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