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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법'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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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수영연맹(FINA)이 박태환(26)에게 18개월 동안 선수자격 정지 처분을 내린다고 24일(한국시간) 발표했다. 금지약물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한 박태환은 예상보다 낮은 수준의 징계를 받게 됐다. 내년 8월 리우 올림픽에 참가할 가능성도 생겼다.

FINA가 23일 스위스 로잔에서 연 청문회는 박태환에게 유리한 길을 터 줬다. 예정된 일정(2월 27일)을 한 달 가까이 미뤄주며 박태환 측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줬다. 청문회가 끝난 뒤 3시간 만에 징계 내용이 발표된 것도 이례적이다. 관례상 청문회 결과는 이르면 사흘, 길면 일주일이 지나야 알 수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약물(S1 등급)이다. 고의성이 없었다 해도 테스토스테론을 투약한 선수는 보통 2년 이상의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박태환은 지난 두 달간 부지런히 움직여 징계 수위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법률 대리인을 안토니오 리고치(스위스)에서 도핑 전문 변호사 하워드 제이콥스(미국)로 교체한 게 통했다. 여기에 이기흥 대한수영연맹 회장 등 '청문회 지원팀'의 노력도 FINA를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FINA, 공을 한국으로 넘겼다=박태환은 자신에게 테스토스테론이 함유된 주사 '네비도'를 투약한 T병원장을 지난 1월 검찰에 고소했다. 청문회 전까지 비밀을 유지할 의무가 있지만 그보다는 고의성 없이 주사를 맞은 점을 확인하고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달 6일 검찰은 "박태환이 금지약물인 줄 모르고 주사를 맞았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박태환 측은 FINA 청문회에서 검찰의 수사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명했다.

FINA는 한국의 여론을 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스포츠계가 금지약물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고 있어 박태환에게도 일정 수준의 징계를 내려야 했다. 그러나 그의 리우 올림픽 출전까지 막는다면 한국 수영계가 입을 타격이 크다는 것도 고려했다.

18개월 자격정지 처분은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정이다. 박태환이 도핑테스트에 적발된 9월 3일부터 징계가 소급 적용된다. 그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딴 은메달 1개와 동메달 5개는 박탈된다. 박태환에 대한 징계는 내년 3월 2일 풀린다. 리우 올림픽 5개월 전이라 대표 선발전을 거쳐 올림픽에 참가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2년 징계가 내려졌다면 올림픽 참가는 아예 불가능하다. 18개월 징계로 인해 공은 대한체육회로 넘어왔다.

관건은 '금지약물로 인해 징계를 받은 선수는 징계 만료 후 3년이 지나야 국가대표로 활동할 수 있다'는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제1장 5조 6항)이다. 이에 따르면 박태환은 2019년 3월 2일 이후에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

◇'박태환 예외규정' 필요한가=박태환은 조만간 해명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대한체육회의 징계를 최소화 하는 게 박태환 측이 내놓을 수 있는 전략이다.

대한체육회로부터 3년 징계를 받지 않으려면 국가대표 선발 규정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체육회 역시 도핑에 대해 엄격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규정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현실적인 방법은 박태환을 예외로 인정하는 것, 즉 '박태환 예외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대한수영연맹은 FINA 청문회에서 "박태환이 2008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한국 수영에 크게 기여한 선수"라며 '박태환의 특별함'을 강조했다. 이 논리로 '박태환 예외'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FINA의 징계 이후 대한체육회의 징계까지 내려지는 건 과도하며, 이중처벌이라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일부 팬들도 "박태환이라면 한 번 정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러나 '박태환 예외'를 논의하는 자체가 특혜라는 목소리도 높다. 고의가 아닌 무지 또는 부주의로 금지약물을 사용해 중징계를 받는 선수가 많은데, 박태환만 구제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대한체육회 박동희 홍보실장은 "국가대표 선발에 대한 새 규정이 지난해 7월 만들어졌다. 꼭 박태환 사건이 아니더라도 도핑 관련한 징계가 이중처벌의 소지가 있는지는 따질 예정이다. 여러 사례를 수집해 법리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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