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하철 역명 유치전 가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대동 5거리에 생기는 역이름을 '우송대 입구역'으로 해 주세요. 이곳에는 우송대를 비롯해 우송공대.우송클리닉센타.우송어학센타.우송도서관 등 미래 사회의 인재를 길러내는 시설이 많으니까요."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노은지구를 통과하는 지하철 역은 반드시 '노은역'으로 지어 주세요."

2006년 말 개통 예정인 대전 지하철 1호선(동구 판암동~유성구 외삼동.총 연장 22.6㎞)의 역 이름을 놓고 최근 대학.공공기관.아파트단지 등의 유치전이 치열하다.

대전시는 시민들의 광범위한 여론을 수렴해 지하철 역 이름을 짓는다는 방침 아래 이달 초 5개 구청을 통해 2천5백장의 설문지를 돌렸다. 또 시 홈페이지(www.metro.daejeon.kr) '여론광장'에서도 시민들의 의견을 받고 있다.

시는 이달 말까지 시민 의견 수렴을 끝낸 뒤 다음달 중 전문가들로 구성된 지명위원회를 열어 22개 역 이름을 확정할 방침이다.

치열한 역 이름 유치전=역 이름에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대학.공공기관.아파트 단지 등이다.

대학은 역 이름이 학교 홍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학생과 학교 관계자 등이 자발적으로 유치전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역 주변의 아파트 단지도 지하철이 개통되면 아파트 값이 한 차례 오르는 데다 역 이름까지 가세되면 이른바 '플러스 알파'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부녀회 등이 중심이 돼 적극적인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 역 이름 유치전이 치열한 곳은 10여곳이다.

동구 대동 5거리에 들어설 역은 인근에 교육기관(우송학원.대전여고.대전대 등)과 상업지역(대동시장).주거지역이 밀집돼 있어 경합이 가장 치열하다.

대전대가 일찌감치 올해 초부터 '대전대역'으로 정해 달라고 시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우송대측은 "우리 학교가 대전대보다 역에서 더 가까이 있다"며 반박하는 상황이다.

중구 대흥동 522에 들어설 역은 주변의 충남도청과 중구청을 비롯, 성모병원.교보생명빌딩 사이에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바로 옆 서대전 4거리는 고유 지명 그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인근 대전시민회관.대전지방병무청.가구백화점단지.삼성아파트단지 사이에 경합이 벌어지고 있다.

서구 갈마동 갈마공원 앞에 들어설 역은 인근 대규모 아파트 단지(누리.파랑새.황실.무지개 등) 주민들 사이에서 역 이름을 둘러싼 관심이 높다.

앞으로 건설될 2호선(경전철)과 연결될 환승역(換乘驛)인 유성구 유성온천역은 온천 지역 상인들이 '유성온천'이나 '유성 4거리'를 주장하는 가운데 인근 충남대가 '충남대'를 병기(倂記)해 주도록 요구하고 있다.

유성구 구암동 국립 대전현충원 입구에 들어설 역의 경우 현충원측은 당연히 '대전현충원'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근 한밭대측은 '한밭대입구'를 주장, 이 대학 총장 출신인 염홍철 시장의 영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혼란스런 역 이름들=일반 시민들이 알기 쉽도록 간단 명료해야 할 역 이름이 국내에서는 다소 길고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집단 이기주의가 성행하면서 특정 집단이나 주민들의 주장을 관계 당국이 명확하게 조정하지 않고 정책을 결정한 결과다.

대표적인 사례는 건설교통부가 최근 '천안아산역'으로 결정한 경부고속철도 4-1공구 역 이름이다. 천안.아산 두 지역에 걸쳐 있는 역에 대해 천안과 아산시가 각각 해당 지역명을 역 이름으로 결정해 주도록 요구하며 대립하자 양쪽 입장을 모두 수용해 어정쩡한 이름이 탄생했다.

지난해 개통된 부산지하철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도 마찬가지다. 두 대학이 치열하게 이름 유치전을 편 가운데 역과 거리는 경성대가 가깝지만 국립대(부경대)를 사립대보다 서열상 우선시한다는 관례에 따라 부산시가 이렇게 결정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성.향토적 특성을 반영하되 특정 업체나 단체와 관련된 명칭은 배제하는 원칙에서 가능하면 4자이내로 역 이름을 지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전=최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