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세계은행 "AIIB와 협력" … 미국, 반대 대신 간섭 나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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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난 라가르드 IMF 총재(왼쪽)와 리커창 중국 총리. 라가르드 총재는 “IMF는 AIIB와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 AP=뉴시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서 가급적 멀찌감치 떨어져 있겠다는 미국의 입장이 변한 것일까. 23일 미국의 태도 변화를 보여주는 일들이 동시다발로 발생했다.

 첫째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지지 표명. 라가르드 총재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고위급 포럼에서 “IMF는 AIIB와 기쁘게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WB)도 가세했다. 스리 물랴니 인드라와티 WB 이사는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인프라 격차를 없애기 위해 자금 공급 기구가 만들어지는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WB는 AIIB와의 협력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국제기구의 움직임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별개로 해석하기 어렵다. IMF는 국제금융질서에서 미국의 이익이 관철되는 핵심 장치며, WB는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국제개발기구다. 두 기구의 메시지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협력’이다. AIIB의 출범과정과 향후 프로젝트에서 IMF와 WB가 모종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두 기구의 배후에 미국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으로선 간접적으로 AIIB에 발을 걸쳐놓는 셈이 된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도 유사한 맥락의 발언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네이던 시츠 미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이 “미국은 국제금융시장 체제를 강화하는 다자간 국제기구를 환영할 것”이라며 “(AIIB가)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기존 기관들과 공동 투자를 하면 오랫동안 검증돼온 운영규범이 유지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그간 AIIB에 대한 중국정부의 과도한 영향력, 인권침해 논란이 있는 개발사업 지원 우려 등을 들어 AIIB가 국제적 기준부터 먼저 충족해야 한다고 압박하면서 거리를 둬왔다. 그런데 이날 나타난 일련의 상황은 WB나 ADB, 혹은 IMF를 앞세우긴 했지만 미국이 AIIB 이슈를 방관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뛰어들 의사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미국이 뒤늦게 몸을 푸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첫째는 아시아 역내에서 중국의 금융패권이 현실로 굳어가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의 만류를 거부하고 AIIB에 참여한 영국·독일 등 유럽 동맹과 생긴 균열 치유다. 미국 내에서도 늦었지만 AIIB와 연결고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문제는 체면이었는데, 결국 미국이 체면을 잃지 않으면서 AIIB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카드로 WB 활용 방안이 부상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은 “기존 국제기구와의 협력에 대해 문을 열어놓고 있다”(주 하이콴 워싱턴 주재 중국 대사관 대변인)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진리췬(金立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임시 사무국장은 22일 중국발전고위포럼에 참석해 “서방 국가들의 참여가 잇따르면서 AIIB 창립 회원국이 35개 국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들어 영국과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 이어 룩셈부르크와 호주·스위스도 최근 참가 의사를 밝혔다. 현재 AIIB 참가가 확정됐거나 참가를 결정한 국가는 33개 국에 이른다. 진 사무국장은 또 “중국이 AIIB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진 것은 특권이 아니라 아시아 인프라 개발을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뉴욕=최형규·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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