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10원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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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20일 김상윤 이마트 과일바이어는 서울 성수동 본사 대신 이마트 가양점으로 출근했다. 이 매장은 불과 1㎞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 강서점이 있어 ‘격전지’로 꼽히는 곳이다. 김씨는 출근 직후 사무실에서 주요 일간지에 나온 신문 광고부터 살폈다. 홈플러스의 오렌지(특대형 기준)가 당초 알려진 750원보다 50원 싼 700원으로 인쇄돼 있었다.

 확인 직후 김 바이어는 홈플러스 강서점으로 향했다. 과일 매대를 둘러보며 과일의 신선도와 가격,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본 김 바이어는 송만준 과일팀장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넣었다.

 “팀장님, 오렌지 특대 30원 낮춰야 할 것 같습니다.” 몇 분 뒤 이마트는 오렌지의 가격을 720원에서 690원으로 바꿨다.

 지난 10일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대형마트 3사의 가격 경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 사장은 당시 “자체마진 1000억원을 투자해 고객들이 많이 찾는 500개 신선상품을 연중 상시 가격 인하해 10~30% 싸게 팔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마트 역시도 홈플러스가 세일에 들어간 12일부터 매장 내에 ‘홈플러스 전단 가격보다 더 싸게 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10원 단위로 경쟁에 들어갔다.

 또 홈플러스와 이마트는 각각 100명 이상씩의 직원들을 상대편 매장에 배치하며 실시간으로 가격을 체크하기도 했다. 구도연 홈플러스 과장은 “안태환 신선식품본부장을 중심으로 품목별 상품팀장들이 모여 매일 새벽 가격 전략을 논의했다”면서 “최저가를 선포한 첫 주부터 가격에서 밀리면 소비자들이 ‘별 것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 사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롯데마트는 이번 이마트-홈플러스 간 ‘가격 전쟁’에서 한 발 떨어져 방관하는 입장을 취했다. 최원석 롯데마트 과장은 “가격경쟁으로 매출 규모가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저가 경쟁’에만 초점을 맞추면 반드시 품질에서 문제가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체적인 페이스에 맞춰 꾸준한 할인 이벤트를 내놓았다. 호주산 쇠고기, 칠레산 연어 등에서 부분적인 행사를 했다. 롯데마트는 오는 26일부터도 최근 가격이 폭등한 국산 주꾸미를 10t 확보해 시세보다 30% 싸게 내놓을 예정이다.

 대형 마트들의 지난 12~19일 8일 동안 마트 3사의 신선식품 매출(이하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은 올랐다. 홈플러스는 11.5%, 이마트 6.4%, 롯데마트 6% 상승했다. 하지만 상품 카테고리별로는 각사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채소류에서는 홈플러스가 1% 올랐지만 이마트가 16.4% 오른 반면, 과일에서는 이마트가 3.9%, 홈플러스가 6.2%, 롯데마트가 6.6% 상승했다. 양곡류에서는 홈플러스 27.4% 상승, 이마트 5.8% 상승, 롯데마트 22.2% 하락을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가격 경쟁 전망을 두고는 업체별로 미묘한 온도차가 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가격 경쟁이 사그라들 것으로 봤다. “출혈성 가격 경쟁은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김윤섭 이마트 부장은 “앞으로 홈플러스 등 경쟁사들의 가격 정책을 살펴가면서 최저가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며 “홈플러스 입점 지역을 대상으로 할지, 전국 매장에서 파격 세일을 할지 고심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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