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변호사 대거 채용에 나서는 이유는…패소율 45% 고액조세소송 적극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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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과세 불복과 고액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법률 전문가 채용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서울지방국세청에는 송무국을 신설하고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를 송무국장으로 영입했다. 또 올해부터 앞으로 매년 변호사 10~20명을 채용해 국세청 내 법률 전문인력을 100명 규모로 확대하기로 했다.

세무 전문인력 집단인 국세청이 법률 전문인력을 본격적으로 수혈하기로 한 것은 1966년 개청 이래 처음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법률전문가를 크게 확충해 현재 변호사가 20명가량 들어와 있다”며 “앞으로 계속 늘려나가 100명까지 확충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20일 임환수 청장(사진)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송무 담당 직원 200여명이 모여 송무국 출범의 각오를 다지는 발대식을 개최했다. 국세청이 변호사를 대거 채용하고 송무국 강화에 나선 것은 기업과 대형 금융회사가 로펌을 앞세워 과세처분에 불복하는 조세소송에 맞서 소송 대응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다.

국세청은 “경제 구조의 변화로 조세소송의 쟁점이 갈수록 복잡화·전문화되고 있으나, 세법이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현상을 따라가지 못해 대응 체계를 강화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조세소송을 ‘제2의 세무조사’로 선포하고 사실관계·법률쟁점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정당한 처분은 끝까지 유지될 수 있도록 대응을 강화한다.

중요사건은 법률 전문인력을 포함한 3인으로 구성되는 팀제로 대응에 나서게 된다. 최근 과세 불복에 나서는 기업들은 대법관·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수두룩한 대형 법률회사(로펌)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소송에 나서고 있다.

국세청은 소송 규모가 2009년 1258건에서 2013년 1881건을 1.5배 늘어나면서 소송금액 역시 1조1098억원에서 2조7688억원으로 2.5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공격적인 소송에 국세청이 패소해 세금을 돌려주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KB국민은행은 국세청을 상대로 한 4000억원대 조세소송에서 승소해 거액의 세금을 환급받아갔다. 국세청의 패소가 늘어나면서 50억원 이상 고액소송 패소율은 2013년 기준으로 45.6%에 달한다.

이같이 패소율이 급증하는 것은 급격한 과세 환경 변화에 따른 결과다. 국세청은 고액 금융거래가 많아지고 국제거래가 확대되고 새로운 유형 거래가 늘어나면서 세법이 미처 규정하지 못한 부분에서 불복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이나 금융회사는 국세청이 과세하면 일단 불복 신청부터 하고 보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결국 국세청이 소송에 패소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세수 차질도 늘어나고 있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2013년 국세청이 불복을 받아들여 되돌려준 세금은 8100억원에 달했다. 조세심판원 관계자는 “불복 사건이 너무 많아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 수시로 야근을 해가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변호사를 해마다 10여명 채용해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고액소송 대응 업무가 늘어나면서 채용하는대로 본청과 6개 지방국세청 조사국 ‘조사심의팀’에 분산 투입하면 많지 않은 규모라는 얘기다.

이들은 과세 단계부터 정교하게 과세하는지를 따져 부실과세를 막고, 과세 불복이 들어오면 소송에도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원고는 돈을 마음껏 쓰지만, 국세청은 예산 때문에 고액 수임료를 줄 수 없다”며 “내부에 법률 전문가를 대거 확충해 조세소송의 대응능력을 높여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하면 조직 내 활력과 건전한 경쟁을 촉진해 조세 행정의 전문성을 향상시킬 것이란 기대도 하고 있다.

김동호 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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