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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묻지마'식 폭로로 유전 투자 물거품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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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유미
박유미 기자 중앙일보 정당출입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박유미
경제부문 기자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에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보낸 항의서한이 공식 접수됐다.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 개발 국정조사 과정에서 한국 정치인들이 확실한 근거도 없이 현지 고위 관료의 뇌물 수수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한 경고의 표현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은 지난 1월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자원 개발의 대가를 KRG 천연자원부 장관이 지정한 계좌에 입금했다. 장관에게 준 뇌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관 실명까지 거론했다. 전 의원은 “쿠르드 정부 계좌로 돈이 입금됐다는 자료가 없다. 업계 관계자라면 이게 뇌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은 이 주장을 인용해 대서특필했다. 현지 야당 의원들은 정치 이슈로 삼으며 맹공격에 나섰다. KRG가 항의서한을 보내 “악의적인 주장”이라며 발끈한 이유다. KRG는 비공식 채널로 “유전개발권(광권) 환수를 포함해 각종 불이익 조치를 검토 중”이라는 경고성 메시지도 보내 왔다. 산업부와 석유공사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의 의혹 제기에 사실상 대책이랄 게 없는 상황이다. 쿠르드 지역 5개 광구엔 순수 사업비만 5000억원이 투자됐다. 이 가운데 석유 매장량이 3억2800만 배럴로 확인된 하울러 광구는 원유 생산을 이미 시작했다. 상가우 사우스 광구는 개발이 진행 중이다. 자치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불이익을 줄 수 있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건 당연한 직무다. 전 정권 고위 인사의 금품 로비나 비자금 의혹은 반드시 파헤쳐야 한다. 그러나 자원 개발엔 나라 밖 상대방이 있다. 게다가 자원외교는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훨씬 많다. 공식 채널은 물론 비공식 채널을 동원해야 할 때도 적지 않다. 따라서 확증 없이 ‘아니면 말고’식의 의혹 제기는 국익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 더구나 ‘자원 개발에 엄청난 돈을 써 가며 과도하게 몰입했으므로’ ‘페이퍼 컴퍼니를 여럿 거쳐 투자했으므로’와 같은 정황 증거만으로 상대국 고위 인사의 실명까지 거론하는 건 위험하다.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들이 해외 시찰에서 돌아와 곧 청문회가 열린다. 위원들의 발언에 전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이런 무대에서 스타가 되고 싶은 유혹이 굴뚝같을 게다. 하지만 그 발언을 해외 자원외교 상대국에서도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끼리 정쟁에 정신을 파느라 자칫 아까운 세금으로 투자해 놓은 해외 자원개발사업이 물거품 된다면 어이없는 국가적 손실이다.

박유미 경제부문 기자